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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하늘, 여기서부터 시작해야겠다." - 비스와바 심보르스카

우엉군 2016. 6. 14. 13:14

 

요즘은 오로지 '삶'만을 생각하려 애씁니다. 더 나은 삶도 아닌, 더 멋진 삶도 아닌 오로지 '삶' 그 자체에 귀 기울이려 애씁니다. 하지만 좀처럼 삶은 정체를 드러내지 않네요. 엠마뉘엘 르파주의 <체로노빌의 봄>으로 체르노빌 30주년을 되새기고, 옥시 가습기 사건에 분노하고, 한강 누님의 맨부커상 수상에 환호하다가도, 미세먼지와 해운 산업의 구조조정으로 또다시 시계 제로... 이런저런 사건사고가 켜켜히 쌓여갈 수록 삶의 생생함은 점점 멀어지는 것만 같습니다. 그래도 비스와바 누님이 계셔서, 잠시나마 정신 차리고 하늘을 한번 올려봅니다. 그러면 시대를 관조하는 그녀의 시선이 시공간을 넘어 전해지는 듯 합니다. 비스와바 심보르스카(Wislawa Szymborska, 1923-2012) 누님의 <끝과 시작> (2007, 문학과 지성사, 최성은 번역) 속의 시 네 편을 기록해 둡니다. 우엉우엉

 

 

 

Wislawa Szymborska (1954)

 

 

 

 

알레그로 마 논 트로포 : 빠르게 그러나 적당히

Allegro ma non troppo (1972, p.201)

 

 

나, 생을 향해 말한다 - 너는 아름답기 그지없구나.
더할 나위 없이 풍요롭고,
한결 더 개구리답고, 마냥 밤꾀꼬리답고,
무척이나 개미답고, 꽤나 종자식물답다.

 

생으로부터 사랑받고, 주목받고,
찬사받기 위해 부단히 노력 중이다.
순종의 의사를 언른 가득 드러내고서
언제나 제일 먼저 그 앞에 무릅을 꿇는다.

 

왼쪽이든, 오른쪽이든
기를 쓰고 쫒아간다.
환희의 날개를 단 채 하늘 높이 날아오르기도 하고,
경탄의 물결에 휩쓸려 몸을 던지기도 한다.

 

이 메뚜기는 얼마나 초원에 잘 어울리는지,
이 산딸기는 얼마나 숲 속에 잘 어울리는지
만약 내가 이 세상에 태어나지 않았다면
감히 이런 생각은 품지도 못했으리라!

 

나, 생을 향해 말한다 - 너와 견줄만한 대상을
결국 찾지 못했노라.
그 무엇도 똑같은 솔방울을
만들어 낼 수는 없으리라.
그보다 낫지도 못하지도 않은
바로 그 솔방울은 더 이상 없으리라.

 

네 관대함과 창의력, 깔끔함과 정확성에
머리 숙여 찬사를 보내노라.
음, 또 뭐가 있을까 - 그래, 더 나아가
네 마법과 마력에도 경의를 표하노라.

 

단지 네 기분을 망치지 않기를,
너를 화나게 하거나 귀찮게 하는 일 없기를.
수천 년 전부터 나는 늘 미소를 잃지 않고,
네 비위를 맞추려고 무던히 노력 중이다.

 

잎사귀의 끝자락을 향해 손을 뻗어
생을 잡아당겨본다.
그래서 정지했는가? 무슨 소리가 들렸는가?

 

아주 잠시라도 좋으니 단 한순간만이라도,
어디로 가는지 잊은 적이 있었던가?

 

 

 

엠마뉘엘 르파주의 <체로노빌의 봄> 중

 

 

 

 

20세기의 마지막 문턱에서

Schylek wieku (1986, p.287)

 

 

우리의 20세기는 이전의 다른 세기들보다
훨씬 더 발전할 예정이었다.
그러나 그 사실을 입증할 기회를 놓치고 말았다.
모든 연도에 일련번호가 매겨졌다.
흔들리는 걸음걸이,
숨 가쁜 호흡.

 

일어나지 않았어야 할 일들이
이미 너무도 많이 일어났다.
또한 기대했던 수 많은 일들이
발생하지 않아다.

 

무어보다도 우리의 20세기는 행복을 향해서,
따뜻한 봄을 향해서 전진할 예정이었다.

 

공포는 골짜기 너머, 산 너머,
멀리멀리 내동댕이칠 예정이었다.
진실은 거짓보다 한발 앞서
목표 지점에 도달할 예정이었다.

 

예기치 못한 몇 가지 비극이
우리를 엄습했다.
전쟁과 굶주림,
그와 유사한 다른 여러 재앙들...

 

무방비 상태의 무력한 사람들을
존중할 예정이었다.
타인에 대한 신뢰,
혹은 그에 준하는 다른 가치들 또한 마찬가지였다.

 

인생을 즐기려고 마음먹은 사람은
결코 실현되지 못할 임무를
떠맡은 것과 매한가지.

 

어리석다는 건 결코 우스운 일이 아니다.
지혜롭다는 건 결코 유쾌한 일이 아니다.

 

희망,
그것은 더이상 저 풋풋한 어린 소녀도,
그와 비슷한 그 무엇도 아니리니, 애석하기 짝이 없구나.

 

바야흐로 신은 인간은 선하면서, 동시에 강인할 수 있다는 사실에
수긍할 예정이었다.
그러나 선함과 강함은 여전히 공존하지 못한다.
선한 인간은 독하지 못하고, 독한 인간은 선하지 않다.

 

"어떻게 살아야 할까요?" 누군가 내게 편지로 물었다.
이것은 내가 다른 이들에게 묻고 싶었던
바로 그 질문이었다.

 

또다시, 늘 그래왔던 것처럼,
앞에서 내내 말했듯이,
이 순진하기 짝이 없는 질문보다
더 절박한 질문은 없다.

 

 

 

Wislawa Szymborska (1960년대 추정)

 

 

 

 

증  오

Nienawisc (1993, p.328)

 

 

보아라, 우리 시대에 증오가
어떻게 효율적으로
자신을 가꾸고 관리하는지.
높은 장애물을 얼마나 사뿐히 뛰어넘는지.
도약하고, 덮치는 것이 그에겐 얼마나 수월한 동작인지.

 

다른 감정들과는 근본적으로 다르다.
오래된 것이지만, 동시에 새로운 것이기에.
스스로 원인을 양산하고,
그 안에서 생명을 싹튀운다.
어쩌다 잠들어도, 그것은 영원한 안식이 아니다.
불면은 힘을 앗아가기보다는 오히려 보태어줄 뿐.

 

종교 탓이건, 그 밖의 다른 이유 때문이건 -
적당한 구실을 마련하고서
출발선에 나아가, 앞으로 뛰어갈 준비를 한다.
조국 때문이건, 그 밖의 다른 이유에서건 -
그럴듯한 핑계를 대면서, 질주하기 위해 벌떡 일어선다.
출발 단계는 그럭저럭 괜찮은 편이고 정의도 함께하지만
결국에 전속력으로 달리는 건 증오 혼자뿐.

 

증오. 증오.
그 얼굴은 사랑의 황홀경으로
일그러지고 만다.

 

누추하고 무기력하기 짝이 없는
다른 감정들.
언제부터 '박애'가
군중들을 염두에 두기 시작해는가?

 

'연민'이 단 한번이라도
결승점에 제일 먼저 도착한 적이 있었던가?
'의심'이 진정으로 사람들을 장악한 적이 있었는가?
오직 스스로를 정확하게 파악하고 있는 증오만이
사람들을 끌어 모을 수 있다.

 

영리하고, 재치있는 데다가 부지런하기까지 하구나.
증오가 얼마나 많은 노래를 작곡했는지 꼭 말로 해야만하나?
두꺼운 역사책 속에서 얼마나 많은 페이지를 차지했는가?
얼마나 무수한 광장과 스타디움에
인간의 시채로 카펫을 깔았는가?

 

자, 이제 아름다움을 창조할 수 있다고
서로를 속이는 일 따위는 그만두자.
캄캄한 밤, 증오의 홍조가 찬란히 빛난다.
장밋빛 여명에 폭발하는 연기는 장대하기 그지없다.
폐허의 존엄함을 맛보고 싶은 은밀한 유혹,
그 위에 굳건하게 솟은 우람한 기둥 끝에서
음탕한 유머를 발견하고 싶은 욕망을 부정하는 것은 자못 힘겨운 일.

 

증오는 대비의 명수다.
소란과 정적,
새하얀 눈 위의 시벌건 핏자국,
추레한 희생자 위에 우뚝 선 단정한 살인자의 모습은
증오가 결코 싫증 내지 않는 중요한 모티브이다.

 

증오는 새로운 임무에 항시라도 적응할 채비를 갖추고 있다.
필요하다면 언제나 끈질기게 기다린다.
사람들은 눈이 멀었다고 수군대지만,
증오가 장님이라고? 천만의 말씀.
저격수의 날카로운 눈으로
용감하게 미래를 응시하는 건
오로지 증오뿐이다.

 

 

 

by Oliver Munday ("A New Dark Age Looms", NYT)

 

 

 

 

하 

Niebo (1993, p.317)

 

 

그래, 하늘, 여기서부터 시작해야겠다.
창턱도, 창틀도, 유리도 없는 드넓은 창.
오로지 구멍 외엔 아무 것도 없는,
그러나 광범위하게 활짝 열린 하늘.

 

하늘을 쳐다보기 위해
일부러 목을 길게 빼거나
화창한 밤을 기다리지 않아도 된다.
나는 등 뒤에, 손안에, 눈꺼풀 위에 하늘을 가지고 있다.
하늘은 나를 단단히 감아서
아래로부터 번쩍 들어올린다.

 

가장 높다란 산봉우리라고 해서
가장 깊숙한 골짜기보다
하늘에 더 가까운 것은 아니다.
그 어떤 곳에 있어도 다른 곳보다
하늘을 더 많이 가지진 못 한다.
떠도는 구름은 하늘에 의해 무참히 짓이겨져
공동묘지의 무덤들처럼 공평하게 조각나고,
두더지는 날개를 퍼덕이는 부엉이처럼
가장 높은 천상에서 부지런히 굴을 파고 있다.
심연으로 떨어지는 모든 것들은
결국 하늘에서 하늘로 떨어지는 것.

 

부서지기 쉽고, 유동적이며, 바위처럼 단단한,
휘발성으로 변했다가, 또 가볍게 날아오르기도 하는
하늘의 조각들, 하늘의 얼룩들,
하늘의 파편과 그 부스러기들.
하늘은 어디에나 현존한다,
심지어 어둠의 살갖 아래도.

 

나는 하늘을 먹고, 하늘을 배출한다.
덫에 갇힌 함정이다.
인질을 가둔 포로다.
포획 당한 포옹이다.
질문에 관한 대답 속에 존재하는 질문이다.

 

하늘과 땅을 분명하게 구분 짓는 건
이 완전무결한 통일체를 인식하는
적절한 방법이 아니다.
누군가 나를 찾고자 했을 때
좀더 빨리 발견할 수 있도록
편의상 보다 확실한 주소지를
허락했을 따름이다.
내가 가진 특이한 인적 사항,
그것은 다름 아닌 감탄과 절망이다.

 

 

 

 

폴란드 시인 비스와바 심보르스카는 '반어적 정밀함(Ironic Precision)' 시풍으로 1996년 노벨문학상을 수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