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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GEF] 사진으로 흑인에 대한 인식을 바꾸다 - 프레더릭 더글러스

우엉군 2016. 8. 4. 11:14

Frederick Douglass, 1818~1895

 

 

사진을 본다. 보우 타이를 한 말쑥한 정장 차림의 백발 노인이 카메라를 응시한다. 눈빛과 눈가의 근육, 굳게 다문 입술, 가볍게 말아 쥔 큰 손으로 보아 상당한 의지를 소유한 인물인 듯 하다. 인생의 역정도 연륜도 자연스럽게 전달된다. 그리고 인생의 끝자락에서 선 지금조차 아직은 내려놓을 때가 아니라는 어떤 비장함마저 엿보인다.

 

사진 속 주인공은 19세기 미국의 노예제 폐지론자 프레더릭 더글러스(Frederick Douglass, 1818~1895)이다. 흑인의 몸으로 미국의 노예 폐지론자이자 여성 인권 옹호론자로 활동했으며, 19세기 가장 영향력 있는 연설가, 작가 중 한명이었다. 1845년 자서전 <미국인 노예 프레더릭 더글라스의 삶의 이야기>으로 큰 반향을 일으켰고, 1847년 반노예 운동을 위한 신문 <북극성the North Star>을 발간하며 활동을 넓혀나갔다. 1860년대 남북전쟁 초기 링컨 대통령의 요청으로 노예 해방과 흑인들의 참전 운동을 벌였고, 많은 흑인들이 북부군으로 전쟁에 참여하도록 앞장섰다. 이후 미국 대통령의 상담역으로 활동했고, 1877년 컬럼비아 특별구 경찰서장, 1889년 주(駐)아이티 공사 등을 역임하며 미국 정부 고위직에 임명된 최초의 흑인이라는 기록을 남겼다.

 

지난 2일, 칼럼니스트 데이비드 브룩스 David Brooks는 NYT에 "예술가가 세상을 변화시키는 방식 How Artists Change the World"이라는 칼럼을 썼다. 그는 위의 사진으로 글을 시작하며 노예제 폐지론자인 프레더릭 더글러스가 흑인의 인식을 바꾸기 위해 당시 뉴아트였던 사진을 얼마나 적극적으로 활용했는가를 추적했다. 당시 '흑인=노예'라는 인식에 갇혀있던 흑인들을 새로운 주체로 끌어올리기 위해 더글라스는 카메라 앞에 종종 섰다. 대부분의 사진 속 더글러스는 검정 코트, 조끼, 보우 타이를 갖춘 격식있는 차림으로 위엄있고 소양있는 존경할만한 사회 일원이었다. 하지만 그런 중산층 프레임 안에도 그는 개인적인 힘을 잃지 않았다. 초기 초상화에서는 주먹을 힘껏 쥐기도 했고, 남북전쟁 중의 초상화에서는 당시 통념을 깨며 카메라를 정면으로 응시하기도 했다. 결과적으로 더글라스는 19세기 가장 많은 초상화 사진을 남긴 인물이 되었다. 링컨 대통령이 126컷을 남길 동안 더글라스는 무려 160컷을 남겼다.

 

문학평론가 헨리 루이스 게이츠 주니어 Henry Louis Gates Jr.는 더글라스가 주로 사용하는 수사적인 비유 중 하나는 '교차배열법'이라고 말한다. 문장 속 두 개의 절을 반대로 배열해 정반대의 문맥을 만드는 것이다. 예를 들어 더글라스의 글 중에는 다음과 같은 표현이 있다. "당신들은 인간이 어떻게 노예가 되는지를 목격했다. 이제 당신은 어떻게 노예가 인간이 되는가를 지켜봐야만 한다." 더글라스는 자신의 초상화 사진에도 교차배열법을 응용한 셈이다.

 

Douglass used his portraits to change the way viewers saw black people. Henry Louis Gates Jr. of Harvard points out that one of Douglass’s favorite rhetorical tropes was the chiasmus: the use of two clauses in a sentence in reversed order to create an inverse parallel. For example, Douglass wrote, “You have seen how a man was made a slave; you shall see how a slave was made a man.”

 

데이비드 브룩스는 더글러스 일화에서 멈추지 않고 '본다'는 행위의 중요성을 꿰뚫는다. 그는 말한다. 우리는 종종 본다는 것이 무척 단순한 행위라는 착각에 사로잡혀 있다고. 당신이 무엇인가를 본다는 것은 곧 그 안에 담긴 정보를 읽는 것이며 필연적으로 평가를 수반한다고. 그렇기에 본다는 것은 어려운 행위라고 말한다. 그에 따르면 인식과 평가는 같은 것이다. 우리는 자연과 경험에 기반한 무의식의 정신 지도를 들고 다닌다. 그 지도는 우리가 세상을 바라보고, 우리가 본 것에 즉각적인 이해와 질서를 부여한다.

 

더글라스는 초상화 사진을 통해 사람들의 무의식 정신 지도를 다시 그리고 있었다. 그는 흑인에 대한 낡은 연상을 지워버리고 그것을 새로운 것들도 대체하고 있었다. 매거진 <Aperture magazine>에 실린 에세이에서 게이츠가 말했듯이 더글라스는 대다수에게 불가피한 것으로 여겨져온 노예제 같은 제도가 지도자들에게 임의적인 것으로 인지되도록 만들고 있었다. 그는 사회와 온전히 살아있는 흑인들을 위한 새로운 이상을 창조하고 있었다. 결과 그 이상에 비추어봤을 때 지금의 현실이 얼마나 다른지도 함께 말이다. (과거 진행형 표현이 정말 아름답다 @,@)

 

Most of all, he was using art to reteach people how to see. We are often under the illusion that seeing is a very simple thing. You see something, which is taking information in, and then you evaluate, which is the hard part. But in fact perception and evaluation are the same thing. We carry around unconscious mental maps, built by nature and experience, that organize how we scan the world and how we instantly interpret and order what we see.

 

With these portraits, Douglass was redrawing people’s unconscious mental maps. He was erasing old associations about blackness and replacing them with new ones. As Gates writes, he was taking an institution like slavery, which had seemed to many so inevitable, and leading people to perceive it as arbitrary. He was creating a new ideal of a just society and a fully alive black citizen, and therefore making current reality look different in the light of that ideal.

 

끝으로 데이비드 브룩스는 말한다. 영상의 시대에도 사진의 힘은 여전히 강력하다고, 그리고 예술은 사람들이 세상을 보는 방식을 바꿀 수 있다고 재차 강조한다. 칼럼 하나에 흑인, 프레더릭 더글라스, 19세기, 노예제, 사진, Aperture magazine, 볾, 인식 등 시대와 인물, 그리고 예술이 모두 다 담겨 있다. 정말 지적이고 풍요로운 글이다. 땡큐 브룩스!! 우엉우엉

 

 

20대 후반으로 추정되는 Frederick Douglass

 

 

 

 

 

Reference

- "How Artists Change the World", David Brooks, NYT, AUG. 2, 2016

- "프레더릭 더글러스", 위키백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