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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와 만화가 나란해집니다 - 구체적소년

우엉군 2017. 5. 25. 11:35

"독거청년" p.19. <구체적 소년> 서윤후 시. 노키드 만화. 2017. 네오카툰 



처음엔 이 작품의 실험성에 매료되어 선택했고 책을 덮을 때는 잃어버린 한 소년 때문에 너무나 먹먹하고 그리웠다. 마지막으로 인상적인 몇 컷을 흉내내면서는 그 자유로움과 성실함에 감탄하고 감탄했다. 


전반적으로 작품은 모호함의 시절을 말한다. 세상과 명확한 관계를 설장하고 명함같은 좌표가 설정되기 전의 시간. 마치 동이 터오기 전의 새벽녘의 어둠같은. 그 중심에 한 소년이 있다. 아직 어른이 되지 않은. 설명되지 않고 답이 없는 것들을 그대로 내버려 두는. 그것이 혼란스럽거나 당황스럽지 않았던 시절을.


작화는 소년의 모호함과 불투명함을 받아들인다. 스스로 속도를 내지 않는다. 간혹 강렬한 시어에도 불구하고 걸음걸이를 유지한다. 때문에 정적이다. 아이답지 않은 긴호흡과 차분한 관조. 분주한 게 있다면 시선 정도랄까. 주변이든 내면이든.


그래도 가끔 시를 뚫고 나오는 작화들이 있다. "독거청년"의 '홀수와 짝수가 나란해집니다'는 전율을 느끼게 했고, "사탕과 해변의 맛"의 파도의 리듬과 클로징컷은 황홀함 그 자체였다.


<섬과 섬을 잇다>를 잇는 경계선 넘기에 대한 기대감으로 시작했지만, 작품 내내 타카노 후미코의 <막대가 하나>와 나란히 걷는 기분이었다. 정말이지 불후의 기념비적인 작품이다. 우엉우엉




"남극으로 가는 캠핑카" p.9. <구체적 소년> 서윤후 시. 노키드 만화. 2017. 네오카툰



    제가 늘 시에서 중요하게 생각하는 수위가 '모호함'인데요. 대다수 많은 사람은 이 모호함을 부정적으로 생각해요. 저도 그래요. 그럼에도 '모호함'이 실재하는 높이이자 깊이인 것들이 있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눈에 띄지 못해 어디선가 호명받지 못하고, 그 자체로 희미해져가는 소년에 늘 연민을 가지고 있었어요... 우리는 모호하다고 말하는 것들을 나쁘다고 해서는 안돼요. 그 모호함에서 피어나게 될 많은 것들도 볼 수 있어야 해요.  (p.36 "단지 유령일 뿐")



<구체적 소년> 서윤후 시. 노키드 만화. 2017. 네오카툰



    어떤 방법으로 인사를 해야 할지, 그리고 그 인사가 새로운 것을 마주하기 위한 인사인지 종종 헷갈리지만, 우물 앞에 한 사람을 두고 그 사람을 자주 들여다보는 멋진 사람이 되고 싶었어요. 그런 사람이 되기 위해 여전히 쓰고, 아직도 쓰고 있어요.  (p.192 "우물관리인")



 <막대가 하나> 타카노 후미코. 2016. 북스토리


 <막대가 하나> 타카노 후미코. 2016. 북스토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