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름이 피어나는 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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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 순례

02. 소박한 마음

우엉군 2015. 3. 4. 09:34

 

 

 

아이가 태어나고 3주가 흘렀습니다. 시간이란 술래를 일찌감치 놓쳐버린 올해, 계절은 어느덧 봄을 향해 달려가고 있네요. 크진 않아도 이런저런 많은 것을 계획하고 챙겨왔던 일상이 한 순간에 증발해버린 기분입니다. 출퇴근을 하는 제가 이 정도면 아내는 더 하겠죠.

 

꽤 오랫동안 공을 들인 블로그인데도 이런 휴지기가 그리 어색하진 않습니다. 오히려 조금 거리를 두고 지켜보니 보이지 않던게 보이는 듯 하네요. 무엇을 그리도 적고 기록해 왔는지, 어떤 시간들을 그렇게 부여잡으려 했는지... 아직도 젊다고 생각하는 나이이지만 문득 그 시절들이 너무나 젊게만 느껴집니다. 그것은 청년의 시간이었을까요.

 

사적인 이야기는 최대한 분리시키는 주의입니다만 오늘은 왠지 너무나 사적인 것들을 우루루 털어내서는 주욱 늘어놓고, 제 멋대로 분류한 뒤에 어떻게든 세계 저편의 이방인들과의 통 분모를 만들어 보고 싶은 심정입니다. 간만에 이런 독백도 좋네요. 돌아보면 부끄러운 그런 찰나들로 가득한, 쓸모없는, 그래서 온전히 살아남는 그런 흔적들 말이죠.

 

 

 

 

'자유'. 10대엔 갈구했고, 20대엔 향유했고, 30대엔 조금씩 멀어져가는 그 녀석. 한 동안 그 녀석에 푹 빠져있었습니다. 모두가 행복을 목표로 할 때, 저는 자유를 목표로 삼았고 단서들을 수집하기 시작했습니다. 여전히 퍼즐조각은 완성되지 않았지만 대강의 윤각이 잡혔을 때 중요한 마음가짐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것은 '소박한 마음'이었죠.

 

'소박한 마음'은 물질적인 것부터 시작합니다. 몇 년을 주말부부로 지냈던 저희 부부는 생활을 이어가기 위해 소박한 생활을 꾸렸습니다. 그러면서 자연히 자립, 중간기술, DIY 등으로 관심이 확장되었죠. 물론 실행할 정도의 부지런함은 아직 제겐 없습니다. 그저 지출모델을 최대한 심플하게 가져가는 것. 소유를 최소한으로 하는 것 정도였습니다. 마침 태동한 공유경제모델은 저 같은 생각을 하는 친구들이 적지 않구나 하는 안도감도 주었습니다. (물론 공유경제는 말도 안되는 경제구조 때문에 벌어진 일이긴 하지만요)

 

그렇게 어렵게 하나하나 조각들을 모으고 2년여의 시간이 흘렀습니다. 빅데이터니 뭐니 말이 많은 시대입니다만 정보가 많으면 결국 본질을 놓치는 법인가 봅니다. 저 또한 손을 놓고 있었습니다. 뭔가 알았다는 기분. 착각에 빠져버리고 만 것입니다. 그러다 이렇게 아이가 태어나 제 일상을 송두리채 흔들어 버리니 이제서야 정신이 듭니다. 결국 '자유'에 다가가는 첫 관문이자 마지막 열쇠는 역시 '소박한 마음' 하나라는 것을요.

 

정신적으로 소박해진다는 것이 무엇일까 문득 생각해 봅니다. 그것은 의 영역일까요? 아직은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주머니를 죄다 비우고 나니, 좀더 가벼워진 듯 하면서도 다시 한번 걸어볼만하다는 기분이 듭니다. 저는 저 스스로도 자유롭고 싶지만, 제 아내도 아이도 자유로운 삶을 살기를 바랍니다. 제 가족도 친구들도 마찬가지 입니다. 좌우니 갑을관계니 하며 선 긋고 분류하고 한정짓지 말고 객관식 문항 따위 버리고 관습 따위 웃어버리고 시대를 앞질러간 멋진 선배들의 실험에서 힌트를 찾아가며 전진하는 삶을 살기를 바랍니다. 용기있는 삶을 살기를 감히 바랍니다.

 

한 바탕 쏟아내니 시원하네요. 다시 시작합니다.

"가볍게, 당당하게, 무엇보다 재치있게!" 우엉우엉

 

 

 

 

 

 

소박한 마음을 잃지 않는 것, 그것이야말로 창조의 기반이 아닐까?
이것을 깨닫게 되었을 때는 어느새 황혼이 가까워 있었고, 나는 어느 정도 힘을 되찾았다.

- 히로나카 헤이스케, <학문의 즐거움>(1982, 2004, 김영사, 박은주) p.108 -

 

 

"가난하게 살기로 했습니다."

- 법정 스님 -

 

 

 

국립현대미술관 MMCA 서울관 '정원' 기념 나들이 (2015년 1월 마지막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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