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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아버지歌

[그아버지歌] 세월호 1년을 되새기며 - 파도에 꽃들

우엉군 2015. 4. 23. 09:09

 

진상규명을 위한 유가족 삭발식 다음날, 대학생들이 수업의 일환으로 김영오씨(유민 아빠)의 목소리를 청해 듣고있다. (2015.04.03, 광화문)

 

 

1년이 지나 다시 세월호를 되새겨 봅니다. 늦어도 작년말이면 모든 시신이 수습되고 작별인사를 건네는 글 하나를 남길 수 있을 거라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그 1년이 거짓말처럼 지나가 버리고 말았습니다.

 

시간이 흐르면 '세월호 세대'라는 말이 전면에 등장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저에겐 'IMF 세대'라는 꼬리표가 있습니다. 엄밀히는 윗 선배들이지만 모든 가족과 개인이 생존에 내몰렸던 IMF 외환위기는 옆으로 확장되는 파문처럼 위아래로도 넓그늘을 드리웠습니다. 2014년 4월 16일 전세계에 생중계된 세월호 침몰이라는 대참사는 세월호 승객들과 유가족뿐만 아니라 이 나라의 모든 학생들과 선생님, 그리고 부모들에게 세월호라는 지울 수 없는 나이테를 새겼음이 분명합니다. IMF와 세월호의 공통점이라면 결국 "각자 살아남아라"가 아닐까요.

 

지난 1년동안 수많은 사람들이 안타까운 그 참사를 추모했습니다. 종교인, 작가, 예술가가 앞장서 시대의 아픔을 어루만졌고, 의사와 상담사는 유가의 드러나지 않은 상처를 치유하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음악가, 만화가, 스포츠인도 모두들 각자의 자리에서 자신만의 방식으로 희생자를 위로하고 격려했습니다. 기레기라는 오명을 얻은 언론도 한국 사회의 안전을 진단하며 뒤늦게 감시견으로서의 본연의 역할을 자처했습니다.

 

하지만 그래서 무엇이 달라졌을까요? 슬픔은 다소 누그러들었을지 모르지만 불안과 분노는 변함이 없습니다. KBS 시사기획 창의 '세월호 1년, 우리는 달라졌나' 방송은 이 지점을 잘 보여주었습니다. 특히 임신을 한 신혼부부가 아이를 위해 '이민'을 담담히 말하는 장면은 충격적이기까지 했습니다. 같은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 많았는지 방송은 동네에서조차 제법 회자가 되었습니다. 경쟁을 가르치는 나라, 치열하게 경쟁해서 사회에 나가도 고용불안과 노후를 또 다시 걱정해야 하는 나라, 하지만 그 전에 언제 어떻게 죽을지 모르는 나라, 더군다나 그 죽음에서 무엇도 배우지 못하는 나라... 지난 1년간 정치가 멈춰있었을 때 우리는 우리가 살고 있는 나라의 진면목을 재확인한 셈이었습니다. 세월호 참사는 단순히 정부의 규제완화와 무능력한 구조활동에만 머물러 있지 않습니다. 그것은 "우리 이렇게 살아도 되는걸까"라는 아주 근본적인 질문을 던진 셈입니다. 그 답 중의 하나가 이민일 뿐입니다. 그리고 유가족들은 온갖 모욕을 견디며 진상 규명 단 하나를 위해 투사로 살아가야하는 것이 세월호 1년의 잔인한 현실입니다.

 

 

 

 

어쩌면 우리에겐 애도, 분노, 좌절을 넘어서서 다른 새로운 것이 필요한지도 모르겠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제 지쳤다고 말하는 것은 그것이 너무나 커서 감당하기 어려운 것이라 그런지 모릅니다. 세월호 참사가 진상 규명을 거쳐 하나의 작고 단단한 무엇으로 압축된다면 그 때는 사람들도 이를 받아들일 수 있지 않을까요. 진상 규명 전이지만 출간된 세월호 관련 서적들 중에도 경제사회적 측면에서 세월호 참사를 분석한 책이 있었습니다. 우석훈 교수의 <내릴 수 없는 배>는 조선산업 강국인 한국이 어떻게 그렇게 노후한 배를 운항하게 되었고, 수학여행을 떠나는 학생들이 비행기가 아닌 배를 타게 된 경위가 무엇이었는지를 명쾌하게 정리하고 있습니다. 그는 말합니다.

 

" 세월호를 야기한 여러 문제들이 있다. 그 중 고등학생들의 수학여행을 페리의 수요 감소에 대처하기 위한 공급으로 본 것, 이는 이 사태가 지닌 여러 문제 중에서 가장 중요한 문제일 수 있다. 비정규직 선장을 고용하고 화물을 과적하는 등 수많은 문제는 다른 나라에서도 벌어질 수 있다. 그러나 어느 나라에서도 자국 청년들이 수학 목적으로 가는 단기여행을 국가 행위의 기본 변수로 보는 경우는 없다."   p.114 <내릴 수 없는 배>, 우석훈, 2014, 웅진지식하우스

 

" 자기네 나라의 청소년을 '아이들'이라고 부르는 선진국은 없다. 그건 제국주의가 자기 식민지 백성을 통치하는 통치술이다. 우리가 청소년을 '아이들'이라고 부르지 않는 날, 그 날이 우리가 세월호에서 진짜로 내리는 날이다. 그 날이 우리의 정부가 총독부 시절의 통치술을 내려놓고 통치의 대상인 국민이 아니라 보편적 존엄을 가진 권력의 기반, 시민으로 대하는 날이다."   p.208

 

힌트는 '시민'에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각자 살아남아라"라고 말하는 국가를 제대로 된 궤도에 올리기 위해서는 우리에게 시민이 되는 지식이 절실한 것 같습니다. 다소 먼 이야기지만 아이가 건강하게 자랄 수 있도록 국가는 무료 예방접종을 제공하고 있습니다. 당연하게 여길 수도 있지만 저는 아이가 예방접종을 할 때마다 이 보건시스템에 무한한 감사를 느낍니다. 개인으로는 도저히 알 수 없는 질병에 대한 지식이 시대와 장소를 초월해 주사 한 방에 집약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비용대비 효과적인 디폴트가 생애주기와 생활환경에 맞춰 도처에 마련되어 있는 것이 건강한 사회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런 사회를 구현하는 것이 시민들의 몫이 아닌가 싶습니다. 그렇다면 저는 그런 시민이 되고싶습니다.

 

지난 4월 15일, 한국작가회의에서 주최한 '세월호 1주기 추모 문화제'에서 록밴드 폰부스의 추모곡 '파도에꽃을'을 처음 들었습니다. 멜로디도 멜로디지만 가사 마디마디가 너무나 깊어 꽤 오랫동안 귓가에 맴돌았습니다. 부디 세월호 희생자와 유가족, 그리고 관계자분들 모두 무사히 항해를 마치시기 바랍니다. 우엉우엉.

 

        

 

 

 

파도에 꽃들

- 노래 폰부스. 작사 박한,  작곡 홍광선, 편곡 박한, 김태우, 이상민, 최민석, 홍광선 -

 

별이 떠있나요 기다리는 곳에
밤새 이슬들이 무겁진 않았나요

난 떠나온 곳의 바람만 외웠죠
파도를 뒤적여봐도 아무 소용이 없었죠

여긴 들어오지 마세요 어둠에 날숨들이 엉킨
폐선같은 이곳은 빛조차 닿지 않는

뒤집힌 꽃잎 뒤집힌 꽃잎

종이 치질 않네요 아직 밤 인가요
늦지 않았다면 이제 사과 할게요
별을 바라본 날 사랑을 꿈꿨고
작은 꽃을 몰래 꺾은 날 누군갈 그리워했단 걸

무슨 일이 일어난거죠 나는 분명 봄이었는데
겨울 나무들처럼 온 몸을 잃어버린

파도에 꽃들 파도에 꽃들

나는 이제야 알았어요 별이 이토록 어둡단 걸
그리고 나의 영혼이 이렇게 무겁다는 걸

파도에 꽃들 파도에 꽃들

어머니 울지 말아요 난 이제 그만 어두워 질래요
다만 내 이름은 꽃잎이라 기억해 줘요

이 깊은 바다 속까지 종소리 들리지는 않겠지만
이 수업도 그렇듯 끝이 나겠죠
파도에 꽃들

 

 

 

시사만화가 박재동 화백이 학생들의 사연을 바탕으로 다시 그린 단원고 희생 학생들 캐리커쳐 (2014.06~, 한겨레)

 

 

        

만화가와 애니메이터의 세월호 참사 끌어앉기(좌, 전승일 작가), 그리고 지지선언(우, 윤태호 만화가)

 

 

한 걸음 뒤에서 일상의 풍경과 표정을 담아내는 최호철 만화가의 광화문 풍경(<금요일엔 돌아오렴> 중)

 

 

         

 재미교포들이 NYT에 게재한 '세월호 광고' 캠페인 (2014.04)

 

 

한지원 만화가의 '세월호를 잊지마세요' (관련 기사 "세월호는 한 번만 침몰한 것이 아니다")

 

 

 

Reference

잊지않겠습니다 (박재동 화백의 세월호 희생자 캐리커쳐, 한겨레) http://0416.hani.co.kr 
세월호 교실 (대학교수들의 세월호 강의자료) http://teachsewol.org/photoessay 
Ferry Disaster in South Korea (세월호 타임라인, NYT) http://www.nytimes.com/interactive/2015/04/12/world/asia/12ferry-timeline.html 
세월호 참사 국민대책회의 http://sewolho416.org 
416 가족협의회 http://416family.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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