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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까지의 세계/낯선 만남

"나는, 졸라 맛있다" - 남자 김씨표류기 (2009)

우엉군 2012. 7. 21. 23:41

 

    볼 때마다 구석구석을 재발견하는 영화들이 있습니다. 저런 장면이 있었구나, 아 그래서 그 소품을 썼었구나... 스스로 발견하는 기쁨을 주는 아주 불친절한 영화들말이죠. 볼수록 새롭고 애정이 쌓이는 그래서 데자뷰를 보듯 어떤 풍경이나 물건에서 자연스레 그 장면을 떠올리게 하는 영화. 그래서 장면 하나하나를 모조리 오려붙여 놓고 싶은 멋진 작품. 오늘로 세 번째 영화 <김씨표류기(2009)>를 봤습니다.

    무엇보다 영화 <김씨표류기>를 좋아하는 이유는 무거울 수 밖에 없는 주제를 유쾌하고 아름답게 그려냈다는 점입니다. 누가 자살미수자와 은둔형 외톨이(히키코모리)의 이야기를 나 좋다고 돈내고 보러갈까요. 감히 말하건대 배우 정재영이 아니었다면 '응애' 울음소리조차 낼 수도 없었을 겁니다. 이를 의식한듯 영화도 남자 김씨(정재영)의 이야기로 시작됩니다. ㅎㅎ

 

 

    이제와 생각해보면 김씨는 정말이지 기이한 사람이었습니다. 저라면 아마 한강 밤섬에 불을 질렀을 겁니다. 한 밤 중이 아니더라도 유람선이 지나갈 때에 맞춰 불을 내면 사람들이 오지 않을까요? 그런데 속세에 돌아갈 마음이 없는 김씨는 오히려 밤섬의 구석구석에 정을 붙이며 수 개월의 시간을 살아갑니다.

    심지어 'HELLO'라는 인사를 건네죠. 세상을 져버린 사람이 세상을 향해 인사를 건네는 것은 어떤 마음일까요? 세상은 자신을 버렸어도 자신은 세상의 안부를 묻는다는 걸까요? 인간은 모두 외롭다는 표현일까요? 저로써는 열번을 봐도 풀리지 않을 부분입니다.

 

 

    무엇보다 멋진 건 김씨 스스로가 맛있는 실험을 하는 대목입니다. 짜파게티 까짓거 안 먹으면 그만입니다. 김씨가 짜장면을 거부했던 시절을 생각해내는건 그만큼 먹고 싶다는 뜻이기도 하지만 워낙 재치있는 사람이기 때문일겁니다. '시간도 많은데 한번 해보지뭐'하는 마음을 그런식으로 끌어낸거겠죠. 정말 무인도에서도 살 사람입니다. '희망소비자가격'에서 '희망'을 발견해내는 사람 아닙니까~ ㅎㅎ

    여하튼 김씨의 실험은 은둔형외톨이의 마음까지도 움직입니다. 그의 실험을, 그 누구도 알아주지 않는 도전을 응원하고 싶은 마음이 드는 거죠. 혼자가 아니라고 지켜보고 있으니 힘내라고 말이죠. 정말 멋진 영상이었습니다. 어쩌면 김씨는 외롭고 버겁고 힘에 부쳐서 뛰어내리고 싶은 현대사회인이 필요로 하는 하나의 인간상이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나이가 들수록 김씨가 남의 일 같지 않아 불편합니다. 나도 저렇게 가까스로 얼굴만 내밀고 허우적대며 살아가고 있는건 아닐까 반문하게 되죠. 그래서 도시에서 노숙자나 다름없는 김씨의 행색이 매일 출퇴근길에 애써 지나치는 노숙자 아저씨들과 겹쳐져 목에 걸립니다. 바구니에 동전을 넣어줄 객기는 없으니 다음주에는 '빅이슈 Big Issue'나 한 권 사야겠습니다.

    그나저나 이런 멋진 영상을 선물한 이해준 감독과 김씨표류기 팀에 늦게나마 감사인사 전합니다. 판타지가 별거 있나요? 한강 한 복판에 무인도를 만들어 낼 수 있다면 그게 판타지죠. 길이남을 명작입니다. 우엉우엉.

 

 

It's your room - 김홍집, 김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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