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름이 피어나는 소리
[애니] "당신을 누가 그렸는지 알고 싶어요" - Le tableau (프랑스) 본문
여기에 그림의 완성도로 계급이 결정되는 별난 세계가 있다. 완전히 채색된 존재 귀족 '투팡'(the Toupins, who are entirely painted), 채색이 완성되지 않은 평민 '파피니'(the Pafinis, who lack a few colors), 마지막으로 채색은 시작도 못한 초벌 스케치인 하층인 '러프'(the Reufs, who are only sketches)가 살아가는 세계 <르 타블로 Le tableau>. 이 세계에는 오직 성과 숲만 존재하고, 모두가 성에서 살아가는 귀족 '투팡'의 삶을 동경한다.
"걔들은 낙서에 불과해."
"어떻게 화가가 그딴 걸 그렸지?"
"첫 스케치거든."
"지워버렸어야지!"
그런 세계에 길들여 지지 않은 세 사람이 있었으니... 하나는 파피니 여성과 사랑에 빠져 화가를 찾아나서는 투팡 '라모 Ramo', 다른 하나는 막연히 숲 너머의 다른 세계를 동경하는 파피니 '롤라 Lola', 마지막은 친구를 잃고 이 세계에 진절머리가 난 러프 '플럼 Plume'이다. 각자의 이유로 셋은 성과 숲이 전부인 세계를 떠나 화가의 그림 너머로 여행을 시작하게 된다.
"화가는 돌아올거야. 돌아오지 않으면 세상 끝까지라도 찾으러 가겠어. 그러면 그림은 완성될거야." - Ramo
"다른 곳으로 애인을 찾으러 갈꺼야." - Lola
모험을 떠난 세 명이 처음 마주하는 건 세계의 끝 '숲'이다. <르 타블로>는 미지의 영역이자 죽음의 영역인 숲을 묘사하기 위해 많은 공을 들인다. 편견과 사건을 중간중간 배치하고, 인물들의 감정변화에 따라 숲의 색과 질감도 다채롭게 펼쳐 보인다. 모험이 시작할 때의 숲과 여정을 마치고 재회하는 숲의 표정의 변화도 놓치지 않는다. 숲은 두려움, 기회, 환희, 위로... 모든 것을 포용한다. 정말이지 압권이다.
작품은 모든 그림이 평등하다거나 각각에는 저마다의 이유가 있다는 식의 뻔한 메시지를 재탕하지 않는다. 오히려 여정을 통해 질문은 변하고, 어떤 답은 미완인 채로 자유롭게 흘러가도록 내버려 둔다. 이 열린 결말은 조금 당황스럽지만, 그렇기 때문에 작품을 보는 관객들이 각자의 성과 숲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는 틈새를 제공하기도 한다. 내가 아둥바둥 살아가고 있는 이 곳이 액자 속 그림 한 장에 불과하다는 불편한 깨달음 말이다.
"그리기 좀 가르쳐 주세요." - Ramo의 질문이 바뀐다.
"그냥 아저씨를 만나고 싶었어요. 근데 지금은... 아저씨를 누가 그렸는지 알고 싶어요!" - Lola 역시
작품은 세 사람의 이야기 외에도 눈을 뗄 수 없는 볼거리로 가득하다. 그림에 관심있는 사람들이라면 <르 타블로>에서 수많은 샤갈, 모딜리아니, 피카소, 마티스를 만날 수 있다. 장 프랑수아 라귀니 감독이 동시대를 살아간 당대의 화가들의 주인공들을 모아 놓고 무슨 말을 하고 싶었는지는 정확히 알 수 없지만, 슈퍼스타들이 함께 여행을 떠나는 것만으로도 어벤져스도 울고 갈 블록버스터급 애니메이션이다. ㅎㅎ
그림은 현실을 투영한다. 물론 현실 너머의 세계를 담아내기도 한다. 그렇다면 현실은 무엇을 담아내는 것일까? 그림 속 세계를 빠져나온 롤라가 현실 세계에서 화가를 만나고, 또 다시 자신을 그린 화가를 그린 것은 누구일까 질문하며 여정을 이어가는 장면은 무척 인상적이다. 롤라는 그 여정의 끝에 신을 만나게 될까? 아직 그것까진 알 수 없다. 하지만 그건 중요하지 않다. 압축하면 화가 또한 그림의 하나인 셈이니까. 그렇다면 롤라도 화가처럼 얼마든 창조해 나갈 수 있는거다. 어쩌면 <르 타블로>는 마리 퀴리의 한 마디를 전하려는 건지도 모른다. 우엉우엉.
"나는 스스로를 실험합니다. 나는 내가 만든 작품입니다. - 마리 퀴리 Marie Curie"
Country: France
Release Date: 23 November 2011 (France)
Runtime: 76 min
Director: Jean-Francois Laguionie
Writers: Jean-Francois Laguionie, Anik Ler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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