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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계의 이단아 - 레진코믹스, 에이코믹스

우엉군 2014. 7. 14. 22:45

 

지난 한 주, 모처럼 다시 살아보고 싶다는 격렬한 두근거림을 느꼈다. 발원지는 레진코믹스 채용공고. 친구 녀석이 보내준 레진코믹스 채용공고로 근무시간에도 불구하고 십여분을 카톡 토론이 오갔었다.ㅎ 진지하게 생각하고 생각해봤지만 당분간 몇년은 움직일 수 없는 상황이었기에 아쉬움은 서랍에 고이 넣어 두는 것으로 결론내렸다.

 

 

 

#1. 레진코믹스 - 직업 만화가의 새로운 교두보

 

 

 

정말 기뻤던 건 채용 공고만으로 '바로 여기야!'라고 말할 수 있는 회사가 한국 만화계에 등장했다는 사실이다. 사실 작년 6월에 창업해 올해 겨우 1년을 넘긴 스타트업이 뭐 그리 대단하냐고 웃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난 한국 만화계에서 레진코믹스(LEZHIN COMICS)의 탄생은 네이버나 다음 웹툰 이상으로, 아마존의 만화 유통회사 인수소식 그 이상으로 한국 만화계에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레진코믹스를 높게 평가하는 것은 세 가지 포인트다. 첫째는 기술에서 출발한다는 것. 웹툰은 이전에도 있었던 상품이다. 하지만 그 상품을 다양한 미디어 환경에 최적화된 방식으로 전달하는 IT 기술을 구축한다는 점에서 단단한 비즈니스 접근이 느껴졌다. 이제야 제대로 된 만화 비즈니스가 시작되는구나 하는 느낌. 이는 단순히 이용자가 만화를 구독하는 방식의 편의성을 넘어서서 만화가가 자신의 작품을 구현하는 방식과 독자와 커뮤니케이션하는 방식의 진화까지도 지원한다는 의미로 받아들여졌다.

 

둘째는 만화가에게 관리시스템을 제공한 것. 만화 유통이란 기술도 중요하지만 결국은 콘텐츠 싸움이다. 진정한 만화 유통채널이 되기 위해서는 한 때의 의리가 아니라 좋은 만화가들이 돈을 벌면서도 성장할 수 있는 선순환 구조가 필수적이다. 이를 위해 레진은 상품(작품)을 제공하는 협력사(만화가)에게 해당 상품 고객들에 대한 세부정보를 제공하는 관리시스템을 제공하고 있다. 단순히 클릭수가 아니라, '누가' 돈을 내고 자신의 만화를 봤는가를 확인할 수 있는 것이다. 이는 결코 쉽게 채택할 수 없는 투명하고 파워풀한 관리시스템이다. 레진은 만화가에게 기업가의 툴을 제공했고 이를 통해 양자는 단단한 신뢰를 형성하게 됐다고 생각한다.

 

셋째는 한국 만화의 다음 단계에 대한 아주 현실적인 바람. 어느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레진코믹스는 만화가가 변호사/의사만큼 돈을 벌 수 있어야 하며, 돈을 많이 벌기 때문에 장래희망으로 만화가를 꿈꿀 수 있는 사회가 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만화가가 낡고 오래된 낭만적인 직업이 아니라 누구나 원하는 이상적인 직업이 되려면 당연히 그에 걸맞는 벌이와 사회적 지위가 수반되어야 한다. 언제까지나 반쪽짜리 예술가로 살아갈 수는 없다. 만화가가 진정한 직업으로 자리매김한다면 그 때는 30대, 40대 성인들의 이야기도 탄생하지 않을까.

 

마치 레진코믹스를 잘 알고 있다는 듯 주저리주저리 떠들고 있지만, 정작 레진코믹스 만화를 본 건 손에 꼽을 정도다. 사이(박수봉), 129페이지로 보내는 편지(이즐라), 먹는 존재(들깨이빨) 등등. 워낙 웹툰에 관심이 없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었다. 하지만 그런 내게도 레진코믹스의 성장은 하나의 선명한 가능성으로 다가온다. 누가 뭐라든 현재 한국 만화의 강점은 웹툰에 있다. 그 웹툰이 레진코믹스를 만나 한국 만화에 어떤 변화를 만들어 갈지 기대가 크다.

 

레진코믹스에서 발표한 1주년 통계. <나쁜상사>의 매출에 주목!! 

 

  1년 누적 작품만 270개. 10년후 DB를 어떻게 활용하고 체계화하는가도 즐거운 고민

 

 

 

#2. 에이코믹스 - 만화의 모든 것을 다시 말한다

  

 

 

비즈니스 측면에서 레진코믹스를 높게 평가하지만, 한국 만화의 생태계 차원에서 더 크게 바라보면 요즘 가장 많은 기여를 하고 있는 집단은 에이코믹스(ACOMICS)가 아닌가 싶다. 레진코믹스보다 2개월 늦게 서비스를 시작한 에이코믹스는 만화에 대한 모든 것을 블랙홀처럼 빨아들이며 전에 없던 방식으로 만화를 말하기 시작했다.

 

에이코믹스의 기본 역할은 만화에 대한 정보를 제공하는 것. 매일 인기 웹툰 Top 10을 집계 발표하는 '데일리 베스트'는 웹툰 홍수에서 살아가는 우리에게 비교가능한 지표를 제공한다. 포털과 전문사이트에 흩어져 있는 웹툰을 요일별로 평점을 수집해 발표한다, 이를테면 웹툰계의 뮤직뱅크인셈이다. 이 간단한 서비스만으로 독자들은 웹툰 전체 지도를 확보하고 그 가운데 벌어지는 지각변동을 이해할 수 있게 된다.

 

이를 중심으로 흥미로운 만화계 소식과 신간 리뷰 등을 통해 새로운 만화계 소식을 수시로 업데이트 한다. 이것만으로도 충분히 의미있는 사이트인데 에이코믹스는 여기서 한걸음 더 나아가 만화계 종사자들을 통해 만화에 대한 깊이 있는 분석도 제공한다. 특히 다양한 전문가들과의 협업을 통해 시야를 한국에 가두지 않고 일본, 프랑스 등 만화 강국으로 확장시키는 점은 큰 매력이다. 일본의 만화기획 시스템을 들여다보기도 하고('warmania의 도쿄만화잡상'), 프랑스 만화서점 거리를 조명하기도 하며(미녀PD의 BDDB), 일본 만화 규제 등 아슬아슬한 만화의 세계(시바우치의 위험한 만화) 등을 들여다 보기도 한다.

 

에이코믹스는 만화종사자들 외에도 다양한 주체를 참여시킨다. 의사, 학자, 기자, 코치 등 각계 인사들을 필진으로 참여시켜 '인생의 만화' 소개를 통해 만화와 그네들의 삶을 살짝 들여다보는 기획도 꾸려가고 있으며, 객원기자 시스템을 도입해 전문가가 아닌 아마추어 만화애독자들을 코너에 참여시켜 화자의 스펙트럼을 넓혀간다. 그리고 이는 자연스레 청중의 폭도 확대되는 방향으로 이어지고 있다. 무척이나 재치있는 방식이다.

  

에이코믹스의 만화 큐레이팅은 웹툰이라는 세계에 갇혀있는 한국 만화에 다양한 상상력을 제공하고 있다. 시간과 공간을 넘나드는 에이코믹스의 글쓰기는 만화를 만화의 밖으로 걸어나오게 하고, 우리 삶의 곳곳에서 만화의 흔적을 발견하는 소소한 즐거움도 제공한다. 만화의 새로운 대중화와 체계화, 나아가 네트워크 형성의 최전방에서 에이코믹스가 부지런히 소명을 다해주고 있음에 감사할 따름이다.

 

 

심지어 일요일에도 집계발표되는 성실한 '데일리 베스트'

 

 

개인적으로 가장 기대가 큰 '미녀PD의 BDDB'

 

 

 

#3. 이 시대 만화의 가치는 무엇일까?

 

오프라인 상에서도 변화는 일어나고 있다. 미메시스를 위시한 그래픽노블의 폭풍 성장, 라이트노블의 당당한 자리매김, 만화 읽기를 자처하는 다양한 잡지들의 출현, 그리고 이런 출판만화를 흡수한 만화방의 새로운 변화들... 심지어 최근에는 불발로 그치긴 했지만 만화 <원피스>가 전시회를 열 정도로 만화 산업은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새로운 부흥기를 맞이하고 있다.

 

하지만 여전히 만화의 위치는 애매하다. 출퇴근 짜투리 시간에 소비하는 웹툰은 모바일 게임과 같으면서도 그만큼의 규모의 비즈니스로 발전되지 않았고, 종합예술을 표방하고 있으면서도 예술가의 지위나 권위는 기대조차 할 수 없는 실정이다. 그렇다고 놀이나 문학의 영역으로 가자니 그건 더 애매하다. 어쩌면 재미, 가벼움, 편안함 등 '만화'가 가지는 장점들이 아이러니하게도 만화의 성장을 저해해 왔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모바일 등 미디어 혁신에 힘입어 진화하는 만화계에 레진코믹스나 에이코믹스와 같은 이단아의 출현은 큰 축복이 아닐수 없다. 한국 만화는 비즈니스적으로도 한 단계 도약해야 하고, 하나의 생태계로서도 외연을 확장시켜 나가야만 한다. 그 길에서 만화는 IT/미디어 기술을 습득해야 하고, 세계 다른 나라에서 진행 중인 만화의 실험에 기꺼이 동참해야 한다. 이 긴 여정이 끝나면 한국 만화는 어디쯤 위치하게 될지 모르겠지만, 그 길에서 만화의 가치를 되묻고 스스로 그것을 증명하기 위한 의미있는 실험들을 지치지 않고 함께 계속해 나갈 수 있기를 바란다. 우엉우엉.  

 

레진 + 에이코믹스 크로스!!

 

 

 

*
LEZHIN COMICS :
https://www.lezhin.com (채용공고 https://github.com/lezhin/apply)
ACOMICS : http://acomics.co.kr (객원기자모집 http://acomics.co.kr/archives/117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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