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름이 피어나는 소리
3월 휴간에 들어간 에이코믹스가 결국 사라졌다. "서버에 연결할 수 없습니다."라는 메시지로 보건대 최소한의 사이트 유지관리조차 이어가지 않기로 한듯. 내부에 어떤 일들이 있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수 많은 이들이 참여했던 2년간의 기록이 그렇게 아무것도 아닌 것이 되어 버리니 안타까움을 넘어 화가 날 지경이다. 김한민의 의 무이처럼 내가 좋아하는 공간은 모두 사라지고 마는 그런 느낌이다. 에이코믹스에 머물렀던, 이제는 수취인 불명의 지난 리뷰들을 하나씩 다시 기록한다. 마지막 리뷰라 너무나 애틋했던 던전시트콤 으로 시작한다. 우엉우엉 던전밥 (2권) 쿠이 료코 Ryoko Kui, 소미미디어, 2016, 각 7,000원 여자가 이슬만 먹고 살 수 없듯, 모험자들도 경험치만 먹고 살 수 없다. 모험자 일행 ..
요즘은 오로지 '삶'만을 생각하려 애씁니다. 더 나은 삶도 아닌, 더 멋진 삶도 아닌 오로지 '삶' 그 자체에 귀 기울이려 애씁니다. 하지만 좀처럼 삶은 정체를 드러내지 않네요. 엠마뉘엘 르파주의 으로 체르노빌 30주년을 되새기고, 옥시 가습기 사건에 분노하고, 한강 누님의 맨부커상 수상에 환호하다가도, 미세먼지와 해운 산업의 구조조정으로 또다시 시계 제로... 이런저런 사건사고가 켜켜히 쌓여갈 수록 삶의 생생함은 점점 멀어지는 것만 같습니다. 그래도 비스와바 누님이 계셔서, 잠시나마 정신 차리고 하늘을 한번 올려봅니다. 그러면 시대를 관조하는 그녀의 시선이 시공간을 넘어 전해지는 듯 합니다. 비스와바 심보르스카(Wislawa Szymborska, 1923-2012) 누님의 (2007, 문학과 지성사, ..
" 진실을 말하라, 거짓말하지 말라, 덮으려고 하지 말라, 나쁜 소식은 직접 제기하라, 그것도 되도록 자신이 먼저 제기하라, 그것도 자신의 언어로 설명하라. " - 美 백악관 공보 라인 위기관리 커뮤니케이션 원칙 p.231 위기관리는 시니어 홍보인들이 결코 피해갈 수 없는 영역이다. 단순 사건사고일 경우엔 비교적 기응변식 대응이 가능하다. 임기응변식 대응은 대기업이 강하다. 리소스가 많기 때문이다. 이른바 물타기식 보도자료 배포가 대표적인 예다. 마케팅팀이나 사회공헌팀의 리소스가 동원된다. 하지만 손실 피해 발생이나 불법 발생의 경우는 차원이 전혀 다른 문제가 된다. 이 때는 기본적으로 법무팀의 영역이 된다. 굳이 법무팀이 개입되지 않더라도 비즈니스상 서비스나 제품 품질이 제대로 전달되지 않을 경우 이에..
좌우를 둘러 보며 피터를 찾는 챠오 (무너지는 하늘 中) 2월 뉴스페퍼민트는 "NPR이 추천하는 매력적인 미국 웹툰"이라는 글을 통해 미국의 주목할 만한 웹툰 세 편을 소개했습니다. 스튜어트 캠벨 Stuart Campbell의 , 댁스 트랜-카페 Dax Tran-Caffee의 , 미나 선드버그 Minna Sundberg의 가 그 주인공입니다. 하나 같이 개성넘치고 실험적인 작품들인데요, 그 중 에 대한 짧은 리뷰 먼저 올립니다. NPR은 을 "대조적인 것의 모음집"이라고 표현했습니다. 정말 함축적이면서도 적절한 표현이 아닌가 싶습니다. 작품은 거대한 사건이 인물들을 몰아가는 방식이 아닌, 각각의 사연을 품은 물건들의 이야기를 추적하는 옴니버스 방식을 채택합니다. 주인공 챠오 Qiao는 말하죠. "새로운 ..
by Angie Wang 3월 27일 부활절 예배가 있던 날, 파키스탄 라호르 Lahore에서 탈레반 극단주의자의 자살 테러가 있었다. 장소는 가족들의 나들이 장소인 이크발 공원. 아이와 여성을 가리지 않은 무차별 테러였고 사망자만 70명, 부상자는 300명이 넘었다. 작가 사라 엘르아자르 Sarah Eleazar는 NYT 오피니언 기고를 통해 파키스탄 교회의 침묵과 극단주의자들에 대한 미온적 대응을 강하게 비난했다. 그녀의 격렬한 글과 대비를 이루며 일러스트레이터 엔지 왕 Angie Wang은 테러로 스러진 아이들의 빈 자리를 그네의 움직임으로 표현했다. 한 편은 폭발하는 분노에서, 다른 한 편은 차오르는 슬픔에서 함께 '공포'를 말하고 있다. 감동적인 작업이다. Yet the psychological..
피곤이 역력한 곶감이사님 " 에이코믹스가 휴간합니다. " 2년 6개월여의 시간 동안 세상의 모든 만화에 대해 이야기를 해온 에이코믹스가 당분간 휴간을 하기로 결정했습니다. 그동안 에이코믹스를 사랑해주신 독자 여러분 고맙습니다. 일단 물러가지만 언젠가는 다시 독자 여러분과 만날 수 있도록 준비하겠습니다. To. 에이코믹스 이세돌 9단과 인공지능 알파고의 세기의 대결로 전세계가 흥분을 감추지 못한 날, 담담하게 아주 차분하게 에이코믹스는 휴간을 발표했습니다. 수석에디터님의 예고로 마음의 준비는 하고 있었지만 막상 공지를 확인하자 차오르기 시작하는 그 먹먹함은 무엇으로도 표현이 되지 않더군요. 제게는 3월 9일 하루, 전세계에서 벌어진 어떤 사건보다도 큰 사건이었습니다. 에이코믹스의 휴간에 부쳐 그 간의 감사..
기온이 영상 13도까지 오른 13일, 1년만에 서울혁신파크를 찾았다. 좀 걷고 싶었다. 불광동 거주 3년, 비 온 다음 날은 걷기를 좋아하는 사람에게 이 동네는 쥐약이다. 동네 자랑인 둘레길은 열혈 산악인이라면 몰라도 동네주민에겐 기피대상 1호. 진흙에 신발이 침몰하기 때문이다. 불광천까지 가기엔 너무 멀고, 토요일 아침 연신내는 보나마나고... 머리 속에 떠오른 곳이라곤 서울혁신파크 정도였다. 담장을 없앤 것 만으로 서울혁신파크는 훨씬 가깝게 느껴졌다. 뉴스에서 볼 때는 별 거 아니라 생각했었는데 막상 가보니 입구가 점에서 면으로 확장되는 건 접근성 측면에서 차원이 다른 일이었다. 예전에는 서울혁신파크에 들어가려면 담장을 돌아돌아 정문까지 가야했는데, 이제는 불광역 횡단보고를 건너 파출소 쪽으로 들어갈..
쓰키지 어시장 카페 '센리'의 커피+치즈케이크 세트, 600엔 "카도데 이이데스카? (カードでいいですか?, 카드도 되나요?)" 짧고 굵었던 2박3일 일본 도쿄 출장 내내 입에 달고 있었던 서바이벌 일본어였습니다. 현금이 곧 신용인 나라. 왠만한 주문은 입구 자판기에서 결재해야 먹을 수 있는 도시. 그런 나라에 법인카드를 들고 출장 놀이를 갔으니 시작부터가 완패였습니다. 그래서 여행기록 따위 남기지 않으려 했지만 쓰키지 어시장의 작은 카페가 계속 아른거려 글을 남깁니다.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쓰키지는 안 되고, 아키하바라는 됩니다. 말장난 같은 이야기를 이제 시작합니다. 1월 출장 마지막 날, 숙소 거점이었던 도쿄 신바시(新橋, Shimbashi) 인근 지역을 돌았습니다. 구두를 신고 걸을 수 있는 반경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