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름이 피어나는 소리
지난 달, 무작정 청주로 야간 여행을 떠났다. 모처럼의 보너스타임 특별히 가고 싶은데는 없었고, 석가탄신일 연휴라 사람 붐비는 곳은 딱 질색이었기에 서울을 벗어나 지방 거점 도시에서 유유자적 하는 것으로 방향을 정했다. 세종시를 먼저 찾았으나 그곳은 아직 1박을 할만한 여건은 전혀 갖추어지지 않았다. 이에 청주로 노선 변경. 만화방에서 밤새 만화나 볼까했는데 웬걸 고속버스터미널 인근조차 심야영업 만화방은 없었다. (주인 아저씨는 곧 심야영업을 시작할 예정이라고는 하셨음 ;;) 다음 날 청주 명물 상당산성을 다녀오는 길에 청주 시내 주요 거리에 만화방들이 전멸한 모습들을 목격했다. 누군가 청주를 교육도시라 칭했던 것이 떠올랐다. 과연 그랬던 것이었을까... 의혹은 뒤로하고 이렇게 된 이상 제대로 된 만화방..
정부가 원전 2기 추가 건설 계획을 발표한 가운데 지구 반대편 아프리카 대륙에서는 신재생에너지 실험이 연승을 이어가고 있다는 소식이 전해져왔습니다. 경제 규모나 자연환경상 다른 선택을 할 수 밖에 없는 것이 각자의 현실이겠지만, 잠재력 가득한 검은 대륙이 신재생에너지를 발판 삼아 화석연료를 건너 뛰고 돌파구를 만들어가는 것이 마냥 신기하고 부럽기만 합니다. 얼마 전 인도가 모바일로 전화기를 건너 뛴 것과 같은 것이겠지요. 기술도 기술이지만 중간 단계를 과감히 건너 뛰는 판단력과 의지가 대단할 따름입니다. 이 선택으로 에너지저장장치(ESS)와 전선 회사들의 희비가 갈리지 않을까 싶네요. 아래는 소식을 전한 The Economist 기사 요약본입니다. 아프리카 대륙에 행운이 함께하기를... 우엉우엉. 남아공..
지난 4월, 서울에 칼폴라니사회경제연구소(Karl Polanyi Institute Asia; KPIA)가 개소했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1988년 캐나다 본부, 프랑스 유럽본부에 이은 세 번째 연구소이자 아시아본부라는 타이틀은 묘한 자부심마저 불러일으키더군요. 그 와중에 본부와 달리 '정치경제연구소'가 아닌 '사회경제연구소'로 명명한 부분 또한 재미있는 포인트였습니다. 소식과 함께 달려갔으나 업무시간 종료, 방문은 다음을 기약합니다. 경제사학자 칼 폴라니(Karl Polanyi, 1886~1964)와의 만남은 5년전이었습니다. 당시 저는 사회적 기업에 대한 관심을 구체적인 직업의 형태로 가져가기 위해 고민하고 있었고, 닥치는 대로 책을 파며 사람들을 만날 때였습니다. 그 때 흘러흘러 만나게 된 책이 칼 ..
진상규명을 위한 유가족 삭발식 다음날, 대학생들이 수업의 일환으로 김영오씨(유민 아빠)의 목소리를 청해 듣고있다. (2015.04.03, 광화문) 1년이 지나 다시 세월호를 되새겨 봅니다. 늦어도 작년말이면 모든 시신이 수습되고 작별인사를 건네는 글 하나를 남길 수 있을 거라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그 1년이 거짓말처럼 지나가 버리고 말았습니다. 시간이 흐르면 '세월호 세대'라는 말이 전면에 등장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저에겐 'IMF 세대'라는 꼬리표가 있습니다. 엄밀히는 윗 선배들이지만 모든 가족과 개인이 생존에 내몰렸던 IMF 외환위기는 옆으로 확장되는 파문처럼 위아래로도 넓게 그늘을 드리웠습니다. 2014년 4월 16일 전세계에 생중계된 세월호 침몰이라는 대참사는 세월호 승객들과 유가족뿐만 아니라 이..
리스본 Lisbon 포르투갈의 수도. 유럽에서 두 번째로 오래된 도시. 일찍이 미지의 대륙을 향해 거인의 걸음으로 대항해 시대를 열었던 모험가들의 도시. 불완전한 인간을 불완전한 그대로 버려두었던 시인 페르난두 페소아 Fernando Pessoa가 태어나고 일하고 걷고 사색한 도시. 세계일주를 기념한 중세 수도원과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서점을 품고있는 도시. 에그 타르트가 태어난 도시... 언젠가는 이 도시를 천천히 걸으며 구석구석 새겨넣은 숨결들을 하나하나 만나보고 싶다. 우엉우엉 #1. Fernando Pessoa와 유서 깊은 카페 "Café A Brasileira" #2. 노랑이 명물, 트램과 "에그 타르트" (Pasteis de Nata) #3. 형형색색 창문들과 타일박물관 "Museu do Az..
'건축물'로 새로운 시공간을 창조하는 만화가 '프랑소아 스퀴턴 Francois Schuiten' 1년 전을 생각합니다. 틈틈이 훔쳐 보던 에이코믹스에서 객원기자 모집공고가 올라왔었습니다. 아마도 근무시간에 처음 봤던 걸로 기억합니다. 퇴근길에도 집에 와서도 한참을 멍하니 있었습니다. 가만히 묻고 물었습니다. 할 수 있을까. 해도 되는걸까. 그렇게 그 날 밤을 보낼 무렵 '밑져야 본전'이라며 단숨에 이력서와 자기소개서를 썼습니다. 비즈니스 이력서만 쓰다가 만화계 이력서를 쓰려니 무척 어색하면서도 재밌었던 기억이 납니다. 자기소개서도 거의 단숨에 휘리릭 써내려 갔죠. 한밤의 연애편지는 보내는게 아니라지만 모든 짝사랑이 그렇듯 오늘밤이 아니면 보내지 못할 것 같아 크게 심호흡하고 메일 '전송'을 눌렀습니다. ..
, 1991, 다카하타 이사오, 지브리 새로운 사건을 기대할 수 없는 아침은 어떤 의미일까요? 오늘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알지도 못하는 청량한 모던락을 듣노라니 문득 리듬에 실려 좌충우돌하던 20대가 생각 났습니다. 그 때는 모든 아침이, 모든 만남이 기대와 설레임으로 가득했던 것 같습니다. 욕을 먹어도 그것조차 배불렀던 시절이 아니었나 싶더군요. 요즘 가장 많이 듣는 음악은 일본 첼리스트 Kaoru Kukita(久木田薫)의 'Unplugged Ghibli'입니다. 스튜디오 지브리의 애니메이션 OST 첼로연주곡인데 아이를 볼 때, 특히 녀석을 잠의 문턱에 밀어 넣을 때 많이 틀고 있습니다. 익숙한 노래들이 심장 소리를 닮은 묵직한 첼로 현으로 울려퍼지면 차분하고 평온해지는 기분입니다. 문제는 가..
아이가 태어나고 3주가 흘렀습니다. 시간이란 술래를 일찌감치 놓쳐버린 올해, 계절은 어느덧 봄을 향해 달려가고 있네요. 크진 않아도 이런저런 많은 것을 계획하고 챙겨왔던 일상이 한 순간에 증발해버린 기분입니다. 출퇴근을 하는 제가 이 정도면 아내는 더 하겠죠. 꽤 오랫동안 공을 들인 블로그인데도 이런 휴지기가 그리 어색하진 않습니다. 오히려 조금 거리를 두고 지켜보니 보이지 않던게 보이는 듯 하네요. 무엇을 그리도 적고 기록해 왔는지, 어떤 시간들을 그렇게 부여잡으려 했는지... 아직도 젊다고 생각하는 나이이지만 문득 그 시절들이 너무나 젊게만 느껴집니다. 그것은 청년의 시간이었을까요. 사적인 이야기는 최대한 분리시키는 주의입니다만 오늘은 왠지 너무나 사적인 것들을 우루루 털어내서는 주욱 늘어놓고, 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