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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 순례

01. 가르침을 떠나, 자기의 궤도를

우엉군 2014. 1. 27. 08:50

 

 DEPARTURE OF THE WINGED SHIP, Vladimir Kush

 

 

5년 전 결혼 후 첫 이직을 마음 먹었을 때, 그 동안 막연하게 누려온 자유가 굉장히 현실적이고 버겁게 느껴졌다. 당시 아내는 새로운 길을 향해 막 떠났을 무렵이었고, 나는 부양의 의무와 마지막이 될지 모를 도전의식 사이에서 고민할 때였다.

 

결과적으로 나는 내가 잘 할 수 있는, 걸어온 길을 다시 걷게 되었지만, 그 짧은 방황을 통해 '자유'란 것이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얼마나 중요한 과제인가를 가늠할 수 있었다. 자유란 무엇이고 그 조건은 무엇인지 묻고 답하는 몇 년의 시간이 있었고, 나는 나름의 답에 다가갔다. 하지만 이제 겨우 몇 개의 조각을 모았을 뿐 여전히 찾고 실험할 것이 많다. 주저 앉지 않기 위해, 계속 나아가기 위해 그 기록을 시작한다. 

 

 METAMORPHOSIS, Vladimir Kush

 

 

 

#1. 가르침을 떠나, 자기의 궤도를

 

 

'헤르만 헤세 Hermann Hesse의 소설 <싯다르타 Siddhartha>(1992, 2004, 문예출판사, 차경아)는 인간 싯다르타가 세상에서 벗어나 열반의 경지에 오르는 궤적을 담고 있다. 싯다르타가 세상과 인간을 극복하기 위해 가장 먼저 한 것은 '모든 가르침과 스승을 떠나는 것'이었다.

 

"저는 오히려 모든 가르침과 모든 스승들을 떠나기 위해서, 그리하여 오로지 나 혼자서 목표에 도달하기 위해서, 그렇지 못하면 죽으려고 떠나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훗날 저는 자주 이 날을 생각할 것입니다." p.50

 

 EYE OF THE NEEDLE, Vladimir Kush 

 

 

사실 초중고에서 대학까지 총 16년, 그 밖에 군생활이나 사회생활을 합치면 거의 20년을 사회로부터 배우며 자란다. 좋고 나쁨, 아름다움과 추함, 옳고 그름 등의 가치체계들이 사고의 좌표를 형성하고 결국 '나'라는 사람의 틀을 구성한다. 그리고 그것은 어느새 너무도 당연하게 내 주위의 모든 사건과 변수를 해석하는 지표로 작동한다.

 

당연하고 익숙해진 가르침을 떠난다는 것은 숨 막히는 일일 수 있다. 분명 일시적인 탈규범 상태를 거쳐, 무엇이 옳고 그른지 판단할 수 없는 무중력 상태에 진입하게 될테니 말이다. 그러니 떠남을 좀더 가벼운 사건으로 만들 필요가 있다. 그러면 편해진다. 이를테면 밤기차 여행이나 산책 같은 걸로 치부해버리는 거다.

 

절대 돌아오지 않겠다고 단단히 마음먹고, 약간의 돈만 지닌채 맨손이나 다름없이 집을 떠난다. 마치 밤 산책이라도 나가듯이 훌쩍. 심각하게 굴 필요도 없다. 가벼운 기분으로 실행하면 된다.

 

버스나 기차를 타고, 아니면 자전거나 오토바이를 타고 밤을 새워 최대한 멀리까지 몸을 옮겨 놓는다. 돌아갈 교통비가 없어질 만큼 먼 곳이 좋다. 홀로 선 사람만이 느끼는 두려움과 기대감, 긴장감을 동반한 설렘이 자유로 가는 입구다.

 

일단 그 입구를 통과하기만 하면, 부모에게 기대 얻는 안정 따위는 하잘것없어진다. 또 집에 틀어박혀 즐기는 암울한 취미와는 비교가 되지 않는, 참되고도 신선한 감동을 만끽하게 된다. 그렇군, 사람이란 이 때문에 사는 것이로군, 하는 삶의 흔들림 없는 해답에 육박해 가는 감동이야말로 자신이 마음속으로 추구했던 것임을 확신하게 된다.

 

- <인생따위 엿이나 먹어라> 마루야마 겐지, 2013, 바다출판사, p.40  

 

 BREACH, Vladimir Kush

 

 

떠나면, 모든 것이 새롭게 시작된다. '혼자'서 인생이라는 자신의 무대를 직면하고 그 소중함과 아름다움을 실감하게 되면 어떻게든 자신의 방식이 모습을 드러내게 된다. 그렇게 얼마간의 시간 후에 비로소 '자기의 궤도'에 진입하게 된다.

 

시간이 걸린다. 그렇기 때문에 인내심이 필요하고, 수많은 좌절과 불안 속에서도 스스로에게 다시 한번 기회를 주는 것이 너무나도 중요하다. 헤르만 헤세는 그 지점을 '내면의 안식처'로 표현하고 있다. 기 막힌 표현이다.

 

"... 카마라여, 대부분의 인간들은 바람에 날려 빙글 돌다가 방향을 잃고 땅바닥에 굴러 떨어지는 낙엽과 같은 존재요. 하지만 드물게도 별(星)처럼 확고한 자기의 궤도를 가는 사람이 있소. 그들은 바람에 조금도 흔들리지 않고, 자기 내부에 그들 나름대로의 법칙과 궤도를 가지고 있소." p.95

 

"당신은 나와 같소. 당신은 대부분의 인간들과 다르오. 당신은 카마라일 뿐 다른 아무것도 아니오. 당신의 마음 속에는 언제라도 그 속에 들어가 당신 자신의 평안을 누릴 수 있는 조용한 안식처가 있소. 그 점은 나 역시 마찬가지지요. 그런 사람은 별로 많지 않소. 누구나 그렇게 할 수 있지만 말이오." p.95

 

 AFRICAN SONATA , Vladimir Kush

 

 

가르침을 벗어나, 자기 궤도에 오른 사람은 무엇을 만나게 될까? 헤르만 헤세는 그것을 열반의 세계로 묘사한다. 모든 구분이 사라지고, 하나로 합쳐져 삶의 에너지로 흐르는 영역. 세상과 인간을 초월한 영역. 어쩌면 자유롭다는 건은 어느 단계에서 구분이 필요없는 경지에 이르는 건지도 모르겠다. 우엉우엉. 

 

그런데 오늘은 새롭게 들렸다. 어느덧 그는 숱한 음성들을 구별하여 들을 수가 없게 되었다. 우는 소리에서 기쁜 소리를, 어른의 소리에서 아이의 소리를 구별하여 들을 수가 없었다. 모든 소리는 한데 얽혀 있었다. 동경의 탄식과 지자의 웃음소리, 분노의 외침과 죽어가는 자의 신음소리, 이 모든 것이 하나가 되었고 모든 것이 뒤섞여 짜이고 맺어져 천 번 만 번 뒤얽혔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이 묶여서, 모든 소리, 모든 목표, 모든 갈망, 모든 번뇌, 모든 쾌락, 모든 선과 모든 악, 이 모든 것이 합쳐서 세상이었다. 이 모든 것이 합쳐서 생성의 강이요. 삶의 음악이었다... 그 말은 완성의 뜻 "옴"이었다. p.171

 

 BIRTH OF LOVE, Vladimir Kush

 

 

배반, 그것은 사람이 생각할 수 있는 가장 혐오스런 것이라고 우리는 어릴 때부터 아버지와 선생님으로부터 들어왔다. 그런데 배반이란 무엇인가? 배반은 대열에서 빠져나가는 것을 의미한다. 배반은 대열에서 이탈하여 미지를 향해 출발하는 것을 의미한다. 사비나는 미지를 향해 출발하는 것보다 더 좋은 것을 알지 못했다.

-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밀란 쿤데라, 1984, 1994, 민음사, 송동준. p.113


 

 

 RED PURSE, Vladimir Kush

 

 ICARUS, Vladimir Kush

 

 

* Reference (About Vladimir Kush)
http://www.jacobgallery.com/art_gallery/limited_edition_prints/Vladimir_Kush/surrealism_limited_edition.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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