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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름이 피어나는 소리
"역시 유아사 마사아키(Masaaki Yuasa)!" 데빌맨 크라이베이비(Devilman Crybaby, 2018)에 대한 찬사는 모두 감독으로 돌리고 싶다. 사실 원작(만화책)을 워낙 별 감흥 없이 봐서 작품 자체에 별 기대가 없었는데 이번 넷플릭스 리메이크판은 너무나 좋았다. 원작자인 나가이 고(Nagai Gō)의 인간을 바라보는 세계관은 예리했지만, 캐릭터의 매력에 비해 이야기 전개는 다소 설명충스러웠다. 새로운 세계를 창조하려니 그런 측면도 있었겠지만 그런 요소들이 몰입에 방해가 됐었다. 하지만 유아사 감독은 그런 것 따위 아랑곳하지 않고 달려나간다. 그렇다고 홀로 질주하는 건 아니다. 오늘의 문맥에 맞도록 원작에는 없던 요소들을 새로 들여와 이야기에 혼을 불어 넣는다. 1972년 원작이 데몬(악..
최고 상석에서 바라본 망원만방 전경 오랜만에 휴가를 내고 그간 벼르고 벼르던 망원동 만화만방 종일권을 이용했다. 평일이라 1만원. 그걸로 12시부터 7시까지 7시간을 눌러 있었다. 왕소라에 오땅 한 봉지씩 도합 총 1만2500원. 이 말도 안되는 금액으로 나는 평화를 얻었다. 감히 말하건대 망원만방은 서울 서북부 최고 만화방이다. 내게 만화방은 던전 투어와 비슷하다. 어떤 곳은 아저씨들만 득실거리고, 또 어떤 곳은 커플이나 중고생만 드글거리기도 한다. 각각 장단이 있지만 어떤 층의 사람들이 주이용자인가는 결국 만화방의 DB를 결정하고 결국 그 던전(만화방)의 레벨까지도 결정한다. 그런 측면에서 만화만방의 DB는 정말 방대하다. 무협 쪽은 당초에 포기하고 웹툰 라인을 갖추면서도 그래픽노블과 마블 라인까지 ..
"독거청년" p.19. 서윤후 시. 노키드 만화. 2017. 네오카툰 처음엔 이 작품의 실험성에 매료되어 선택했고 책을 덮을 때는 잃어버린 한 소년 때문에 너무나 먹먹하고 그리웠다. 마지막으로 인상적인 몇 컷을 흉내내면서는 그 자유로움과 성실함에 감탄하고 감탄했다. 전반적으로 작품은 모호함의 시절을 말한다. 세상과 명확한 관계를 설장하고 명함같은 좌표가 설정되기 전의 시간. 마치 동이 터오기 전의 새벽녘의 어둠같은. 그 중심에 한 소년이 있다. 아직 어른이 되지 않은. 설명되지 않고 답이 없는 것들을 그대로 내버려 두는. 그것이 혼란스럽거나 당황스럽지 않았던 시절을. 작화는 소년의 모호함과 불투명함을 받아들인다. 스스로 속도를 내지 않는다. 간혹 강렬한 시어에도 불구하고 걸음걸이를 유지한다. 때문에 정적..
오늘 애니메이션 을 봤다. 신카이 마코토의 기존 작품들의 캐릭터와 명장면들이 단층처럼 쌓여 있던 멋진 작품이었다. 중간중간의 OST들이 좀 거슬리긴 했지만 신카이 감독이 드디어 새로운 임팩트를 찾았구나 싶어 박수를 쳐 주고 싶을 지경이었다. 눈송이 씬은 의 빗방울 씬처럼 감동적이었다. 버스커버스커의 "벚꽃 엔딩"처럼 사계절 패키지를 갖추려는 신카이 감독은 욕심쟁이 우후후!!! 그럼에도 불구하고 극장을 나와 길을 걸어가는 내내 애니메이션 의 관람차의 풍경이 자꾸 생각났다. 이 영화라는 미디어를 제대로 살렸다면, 는 TV 시리즈물의 속도와 정서가 참으로 잘 어울렸구나 싶었다. 그라고 내 일생의 명작 과 어깨를 나란히 할 만한 작품으로 최종 라인업했다. ^^ 2016년 4분기 일본 TV 애니메이션 는 2016..
좌우를 둘러 보며 피터를 찾는 챠오 (무너지는 하늘 中) 2월 뉴스페퍼민트는 "NPR이 추천하는 매력적인 미국 웹툰"이라는 글을 통해 미국의 주목할 만한 웹툰 세 편을 소개했습니다. 스튜어트 캠벨 Stuart Campbell의 , 댁스 트랜-카페 Dax Tran-Caffee의 , 미나 선드버그 Minna Sundberg의 가 그 주인공입니다. 하나 같이 개성넘치고 실험적인 작품들인데요, 그 중 에 대한 짧은 리뷰 먼저 올립니다. NPR은 을 "대조적인 것의 모음집"이라고 표현했습니다. 정말 함축적이면서도 적절한 표현이 아닌가 싶습니다. 작품은 거대한 사건이 인물들을 몰아가는 방식이 아닌, 각각의 사연을 품은 물건들의 이야기를 추적하는 옴니버스 방식을 채택합니다. 주인공 챠오 Qiao는 말하죠. "새로운 ..
새해가 되어서야 2015년 만화를 정리합니다. 아무리 틈이 없어도 '2015년 올해의 만화'를 정리해야한다는 일념은 도대체 어디에서 나오는 건지... 2015년, 아빠라는 역할이 추가되며 더 정신없었던 한 해였습니다. 2014년에는 손에 닿는 대로 최대한 많이 보려했다면, 2015년에는 없는 시간을 쪼개가며 일정한 시간 간격을 두고 고르고 골랐습니다. 그래도 제법 봤더라구요. 그 가운데 길어올린 제 맘대로 '2015년 올해의 만화'입니다. 덕분에 즐거웠습니다. 2016년도 잘 부탁해요, 제발~~~ 우엉우엉 #1. 올해의 사건 - 샤를리 에브도 Charlie Hebdo 테러 2015년은 1월 7일 프랑스 풍자신문 에 대한 총격 테러로 시작됐습니다. 웃음으로 세상을 관통하려는 만화인들에게 IS는 총알로 응답..
The Boat 메인 페이지 9월, 세계의 화두는 '난민'으로 시작됐다. 2일 터키 해변에서 숨진채 발견된 3살 아기의 시체는 유럽의 책임을 촉구했고 이에 부응한 독일과 프랑스는 난민 수용규모를 확대했다. 오스트리아, 핀란드, 교황청이 차례로 문호를 넓혔다. 반면 이스라엘은 오히려 장벽을 쌓고 있다. 세기적인 난민의 대열을 만들었고 누구보다 그 수혜를 입은 이스라엘의 모순적 행보는 그저 안타까울 뿐이다. 시간을 거슬러 올해 4월, 호주에서는 베트남 난민 정착 40주기를 기념하는 특별한 만화가 제작됐다. 제목은 . 보트 피플로 명명됐던 베트남 난민들의 베트남 탈출기를 다룬다. 이야기는 폭풍우가 몰아치는 바다 위 보트 한 척에서 시작된다. 주인공은 16살 소녀 '마이(Mai)'. 그녀는 공산당과 싸우다 피폐..
어차피 만나게 될 만화는 어떻게든 만나게 되는 것 같습니다. 작년 주변에서 최규석 만화가의 을 보라고 그렇게들 추천을 했는데 한 귀로 흘렸더랬죠. 봐야할 녀석들이 줄을 섰었거든요. 그런데 지난주에 시사인에서 웬 별책부록을 하나 보냈길래 익숙한 그림체가 있어 무심히 펼쳤더니... 프롤로그 하나로 그만 송곳의 마수에 걸려 들고 말았습니다. 그리고는 결국 달렸네요. 송곳과 함께하는 '노동자 권리 찾기 가이드북' (시사IN 별책부록, 가치있는 건 항상 비매품) 솔직히, 옆구리 찌르는 만화 별로 달갑지 않습니다. 만화를 덮었을 때의 후유증이 꽤 버겁거든요. '나 지금 여기서 뭐하고 있는거지?'라는 아주 떨떠름한 찌꺼기는 그야말로 처치곤란입니다. 식혜 마시고 남은 밥건더기 같은... 그에 비해 과 동류의 영화 는 ..
지난 달, 무작정 청주로 야간 여행을 떠났다. 모처럼의 보너스타임 특별히 가고 싶은데는 없었고, 석가탄신일 연휴라 사람 붐비는 곳은 딱 질색이었기에 서울을 벗어나 지방 거점 도시에서 유유자적 하는 것으로 방향을 정했다. 세종시를 먼저 찾았으나 그곳은 아직 1박을 할만한 여건은 전혀 갖추어지지 않았다. 이에 청주로 노선 변경. 만화방에서 밤새 만화나 볼까했는데 웬걸 고속버스터미널 인근조차 심야영업 만화방은 없었다. (주인 아저씨는 곧 심야영업을 시작할 예정이라고는 하셨음 ;;) 다음 날 청주 명물 상당산성을 다녀오는 길에 청주 시내 주요 거리에 만화방들이 전멸한 모습들을 목격했다. 누군가 청주를 교육도시라 칭했던 것이 떠올랐다. 과연 그랬던 것이었을까... 의혹은 뒤로하고 이렇게 된 이상 제대로 된 만화방..
올해는 유독 만화계가 풍성하게 느껴진 한 해였습니다. tvn 드라마 의 화려한 비상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만화가의 사회참여, 플랫폼 다양화, 무크지 부활, 그래픽노블의 지속적 성장 등 복합적인 시너지가 동시다발적으로 전개된 까닭이 아닌가 싶습니다. 개인적으로도 에이코믹스 객원기자로 활동하게 되어 더없이 분주하고 행복했던 한해이기도 합니다. 워낙 독보적인 해라 (지극히 개인적인 기준으로) '2014 올해의 만화' 정리합니다~~ 우엉우엉 #1. 올해의 인물 - 의 '유양' 상사의 면상에 눈깔(굴)을 집어던진 '유양'. 그녀가 있어 올해가 너무나 행복했습니다. 회사라는 단체의 일원으로는 결코 살아갈 수 없는 그녀가 결혼에 기대지 않고 맨몸으로 삶을 뚫고가는 모습은 남자인 내게도 전우애를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했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