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록세월호 (3)
구름이 피어나는 소리
헌재가 대통령 파면을 인용했던 3월, 나는 깊이 더 깊이 걸어들어가고 있었다. 여전히 매주 한 번쯤은 새벽 4~5시 사이에 눈을 떴고, 그러던 어느날 나는 운명의 주인을 받아들여야만 했다. 내 인생이 지구와 달처럼 공전자전하며 어떤 지점을 막 통과하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아일랜드, 한국, 시리아를 오가며 무엇이 더 근본적인 것인지. 그래서 결국 한국에서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는건지 묻고 또 묻는 시간이었다. 여전히 과거의 지식과 기술은 나를 놓아주지 않았다. 다만 그 폭이 훨씬 폭이 넓어지고 무모해(?)졌다. 난생 처음 국제부를 만났다. 선임기자와 데스크를 만나 솔직히 물었다. 나는 증거가 필요했다. 언론홍보에 대한 일방향적인 에너지를 얼마나 더 유지해야하는지 가늠이 되지 않았다. 거절 당하는..
진상규명을 위한 유가족 삭발식 다음날, 대학생들이 수업의 일환으로 김영오씨(유민 아빠)의 목소리를 청해 듣고있다. (2015.04.03, 광화문) 1년이 지나 다시 세월호를 되새겨 봅니다. 늦어도 작년말이면 모든 시신이 수습되고 작별인사를 건네는 글 하나를 남길 수 있을 거라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그 1년이 거짓말처럼 지나가 버리고 말았습니다. 시간이 흐르면 '세월호 세대'라는 말이 전면에 등장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저에겐 'IMF 세대'라는 꼬리표가 있습니다. 엄밀히는 윗 선배들이지만 모든 가족과 개인이 생존에 내몰렸던 IMF 외환위기는 옆으로 확장되는 파문처럼 위아래로도 넓게 그늘을 드리웠습니다. 2014년 4월 16일 전세계에 생중계된 세월호 침몰이라는 대참사는 세월호 승객들과 유가족뿐만 아니라 이..
By Gregorio Borgia, AP 8월, 좀처럼 글을 쓸 수 없었다. 휴가 시즌에 개인적인 일로 가득했기도 했지만 핵심은 좀처럼 진전이 없는 국가적 재난 '세월호' 때문이었다. 사무실에 앉아 일하고 있었지만 여전히 십자가를 지고 순례하는 유가족, 목숨을 걸고 단식을 이어가는 유가족의 소식으로 마음이 편치 않았다. (4월 16일 세월호 참사로부터) 138일이 흘렀다. 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세월호는 잊혀지긴 커녕 오히려 깊숙히 가라앉아 가슴에 돌처럼 박히고 말았다. 다른 사고처럼 또한 무뎌질거라 생각했지만 그렇지 않았다. 이제는 알 것 같다. 우리는 결코 세월호에서 자유롭지 못 할 것이라는 것을. 월드컵과 김연아가 시대의 축복이었다면 세월호는 또 다른 대칭점으로 시대의 좌표 상에 위치하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