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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에는 노래가 담겨야할 것 같소." - 김환기

우엉군 2013. 11. 14. 10:15

 

 

지난 일요일, 윗 동네 '환기미술관'에 다녀왔다. 한국 추상미술 대가이신 김환기 화백(Whanki Kim, 1913~1974)이야 익히 알고 있었지만, 지인들이 선생님의 작품은 환기미술관에서 보는게 제 맛이라고 세뇌를 시켜서 근 1년을 벼르다 가을 나들이를 청했다. 환기미술관은 형형색색의 단풍들로 둘러 쌓여 있었고, 곳곳에 꽃나무와 조소 작품들이 배치되어 마치 잘 정돈된 정원 같았다. 마치 프랑스의 유명 화가 미술관을 방문한 것처럼 입장료(1만원, 성인)가 전혀 아깝지 않았던 깊이 있는 시간이었다. 작품에 몰입할 수 있도록 설계된 우아하고 장엄한 미술관 실내 구조도 무척 인상적이었다.

 

훔치고 싶은 김환기 화백 작품과 글귀 일부를 추린다. 여담이지만 이미지를 모으는 과정에서 대표 작품들을 온라인에서 구할 수 없었던 게 너무 안타까웠음을 고백한다. 환기미술관이 일부 작품을 제공하고 있었지만, 해외 유명 작품들처럼 미술협회 차원에서 대표 작품들을 DB화해서 제공하면 한국의 미술계 인지도 제고에 좋을텐데... 생각했다. 구글 아트 프로젝트처럼 디지털 시대에 걸맞게 거장들의 작품을 온라인 상에서 접할 수 있다면 정말 근사할 것 같다.

 

 

 

#1. 나무, 달, 여인들, 판자촌 (1933~1953)


 

30년대 일본 유학시절을 지나 한국전쟁의 시기까지의 작품들. 초기 작품이라고 하기엔 너무 긴 시기이지만 일관되지 않은 김환기 화백의 다양한 테마들을 경험할 수 있는 시기라 한 데 묶어 둔다. 한국전쟁 기간 동안, 전쟁의 참상보다도 화백은 그곳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그려내려 했다는 따뜻한 평론이 기억난다. '꽃장수(1952)'는 이를 잘 대변하고 있다. 부산에서 그린 판자촌과 여인들 연작을 그렸던 30대 후반의 김환기 화백은 이 시기를 통해 현실감과 이를 돌파하는 자신만의 관점을 다듬을 수 있지 않았나 싶다.

 

 

나무와, 1948

 

 

항아리와여인들, 1951


 

 

꽃장, 1952

 

 

 

#2.  달항아리, 달, 산, 매화  (1954~1963)

 

전후 김환기 화백은 달항아리(백자)에 대한 사랑을 본격적으로 승화되는 것에서 시작되는 듯 하다. 아내인 김향안 화백의 말에 따르면 한국전쟁으로 부산 피난길에 오르던 당시 김환기 화백이 강에 자신의 달항아리들을 빠뜨리며 '부디 살아 있어라' 작별인사를 전했을 정도라고 한다. '달빛 교향곡(1954)' 등 달항아리를 메인 테마로 한 작품들이 있는가 하면 달을 따로 떼어 산과 나무 등에 걸쳐내는 작품들도 쏟아낸다.

 

" 예술과 조국은 분리할 없을 같애... 정리된 단순한 구도, 미묘한 푸른 빛깔. 이것이 나만이 있는 세계이며 일일거야." - 김환기

  

 

 

삼각, 1954 

 

 

1956년 김환기 화백은 파리에서 추상의 세계를 심화시켜 나간다. 파리 생활을 통해 그는 '시정신'과 조우하고, 대상을 단순화시키고 함축하는 작업에 집중하게 돤다. 동시에 자연스럽게 한국적인 것에 대해 더 깊이 고민하는 시간을 마주한다.

 

"여기 와서 느낀 것은 시정신이요. 예술에는 노래가 담겨야할 같소. 거장들의 작품에는 모두 강력한 노래가 있구려. 지금까지 내가 부르던 노래가 무엇이었다는 것을 나는 여기 파리에 와서 구체적으로 알게 같소." - 김환기

 

 

 

영원것들, 1956 

 

 

 

#3. . 파랑오방색, 노래 (1963~1974)

 

51살의 나이에, 김환기 화백은 뉴욕행을 결심한다. (대단하다.@,@) 그 곳에서 수많은 실험 끝에 '점화'를 탄생시키고, 우리가 기억하는 필생의 역작들을 연이어 쏟아 낸다. 환기미술관에 입장하면 만나게 되는 작품 '우주 5(1971)'가 그 대표작. 수평선처럼 점, 선, 면의 세계를 눈 앞에 펼쳐낸 작품을 접하면, 관람객은 범인으로서는 감당할 수 없는 대담한 화폭의 스케일에 압도당하고, 뒤이어 점과 선을 이어나간 그 궤적의 경로에서 할 말을 잃게 된다. 김환기 화백은 스스로 자신의 선이 하늘 끝에 닿을 것인가 물었지만 나로써는 그 선이 과연 하늘만 향했던 것인가 되묻고 싶을 정도로 거침 없다. 뉴욕에서 만난 새로운 지평과 노래, 그 가운데 새겨 넣었던 오방색 등이 마치 교향곡처럼 울려 퍼진다. ('고요 VII-65(1965)', '4-IV-68 #8(1968)', '20-IV-70(1970)')

 

 "예술은 이론을 초월하는데 묘미가 있다." - 김환기

 

 

 

17-IV-71, 1971, '어디무엇이되어다시만나랴' 연작

 

 

 

 

  

 

듀엣 22, 1974 

 

 

낙옆을 한아름 품고 있었던 환기미술관. 내년 가을에 다시 만나요~ 우엉우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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