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름이 피어나는 소리
서울혁신파크에 가자! - #1. "살아있는 영혼은 잘 번진다" 본문
기온이 영상 13도까지 오른 13일, 1년만에 서울혁신파크를 찾았다. 좀 걷고 싶었다. 불광동 거주 3년, 비 온 다음 날은 걷기를 좋아하는 사람에게 이 동네는 쥐약이다. 동네 자랑인 둘레길은 열혈 산악인이라면 몰라도 동네주민에겐 기피대상 1호. 진흙에 신발이 침몰하기 때문이다. 불광천까지 가기엔 너무 멀고, 토요일 아침 연신내는 보나마나고... 머리 속에 떠오른 곳이라곤 서울혁신파크 정도였다.
담장을 없앤 것 만으로 서울혁신파크는 훨씬 가깝게 느껴졌다. 뉴스에서 볼 때는 별 거 아니라 생각했었는데 막상 가보니 입구가 점에서 면으로 확장되는 건 접근성 측면에서 차원이 다른 일이었다. 예전에는 서울혁신파크에 들어가려면 담장을 돌아돌아 정문까지 가야했는데, 이제는 불광역 횡단보고를 건너 파출소 쪽으로 들어갈 수 있어 너무나 편했다. 문턱을 낮춘다는 것의 의미, 서울시가 추구하는 혁신의 첫걸음을 음미할 수 있었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공원(파크)이 시작됐다.
파크에 발을 들여 놓는 순간, 기괴한 설치물들이 인사를 건넨다. 낡은 건물들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은 전위적인 설치물들이 도발적인 포즈를 취하고 있다. 마치 해외물 먹은 유학파 청년들이 '니가 혁신이 뭔지 알아?' 떠보는 것만 같다. '워크샵 프로젝트'라는 일부 문구로 유추한다면 이 건축 프로젝트는 일하는 공간에 대한 새로운 해석이 아닌가 추측된다. 공사 중인 건축물인지 임시 설치물인지 의심하며 거리를 두고 바라보다가 암호 같은 시그널을 해석하고 문 하나를 열었다. 그제서야 마치 찾아내 주길 기다렸다는 듯 건축 프로젝트에 대한 설명이 하나둘 나타나기 시작했다.
그 중에서도 단연 압권은 센터에 위치한 비닐하우스 구조물이었다. 규모나 위치상으로 당연히 공사 중인 건축물인줄로만 알았는데 이 또한 건축 프로젝트의 한 부분이었다. 계단과 입구를 갖춘 2층 구조물인데 비닐 사이로 과감히 손을 밀어넣으면 밖에서는 보이지 않는 내부 공간으로 진입할 수 있다. 구조물은 두 가지면에서 파격적이었다. 첫째는 따뜻함, 둘째는 밝음이다. 모두 비닐 소재의 특성에 기인하는데, 반투명 비닐이 바람을 막고 빛을 통과시켜 이뤄낸 아늑함이었다. 중앙홀에는 테이블과 의자들이, 한 켠에는 안전모가 비치되어 있었다. 2층은 다소 삐걱삐걱한 느낌이 있었고 이를 감안한 추락주의 표시가 곳곳에 있었다. 비닐, 합판, 플라스틱, 철골 등 최소한의 자재로 작가가 만들려고 한 작업장은 무엇이었을까? 바람은 막고 빛은 통과시켜주는 해가 있는 근무시간에만 유효한 공간. 생각이 걸음을 멈췄을 때 중앙홀 2층 난간의 문구가 눈에 들어왔다. "살아 있는 나뭇가지는 잘 휘어지고, 살아 있는 영혼은 잘 번진다."
담장 자리와 설치물을 지나면 파크 입구와 미래청 진입로에 작은 도서관들이 보인다. 토요일이라 들어갈 수는 없었지만 세 개의 도서관이 각자 주제를 나눠 대표적인 도서들을 진열하고 있었다. 일례로 '생각과 책' 도서관은 진중권의 <생각의 지도>가 한 면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별도 의자가 없는 걸로 봐서는 일종의 읽을만한 책을 소개하는 쇼룸같은 기능을 표방하는 듯 하다. 낯선 실험이지만 나름 흥미로웠다. (도서관 관련 내용은 FULLEN 블로그가 정리를 잘 해 놨다)
건물 입구에 도달하기도 전에 몸도 마음도 이미 배가 불렀다. 따뜻한 봄이 오면 가족과 친구들이 함께 봄소풍하기에 더 없이 좋을 듯. 불과 1년, 폭풍 성장한 서울혁신파크에게 감사의 인사를 전하고 싶다. 은평구 불광동 지역주민으로서 늘 공공장소나 복합공간에 갈증을 가지고 있었는데 좋은 공간을 만나게 된 것 같다. 서울시민으로서, 그리고 지역주민으로서 서울혁신파크가 더 역동적이고 다채로운 실험 공간으로 성장할 수 있기를 힘껏 응원한다! 우엉우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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