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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까지의 세계/비즈니스 수색일지

새로운 기업가들이 무르익는 시간

우엉군 2012. 3. 11. 21:59


1.
바야흐로 '기업가'의 시대입니다. 환경, 보건, 교육, 예술 등 모든 분야에서 기업가 정신이 적용되고 있으며 또한 요청되고 있습니다. 기업가란 단순히 자본을 창출하는 경영능력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기업가란 '기회로 전환될 수 있는 문제를 찾기 위해 항상 깨어있으며 한정된 자원을 활용해 목표를 달성하는 창의적 방법을 찾아내는 사람'이며 이는 삶을 확장하고 설계하는 능력과 맞닿아 있습니다. 저 또한 인도 여행 이후, 늘 기업가의 삶을 지향하고 있습니다.

5년 전 뉴델리에서 여행을 막 시작할 무렵, 하루에 한 번은 '에베레스트 카페 Cafe Everest'란 곳을 찾아 끼니를 해결했습니다. 처음엔 비좁고 가격대도 착한 편이 아니라 좋은 인상은 아니었지만, 문 밖으로 퍼져나오는 진한 시나몬 향의 유혹을 좀처럼 거절할 수 없었죠. ㅋ

하루는 영국 아가씨와 합석을 했습니다. 그녀는 패션 포토그래퍼였고 사업상 인도를 방문하고 있는 중이었습니다. 촬영 차 방문인지 알았는데, 인도의 예쁜 신발을 수집해 영국 부띠끄에 공급하는 진짜 사업을 하고 있었습니다. 패션 산업이 발달한 영국은 포토그래퍼가 워낙 많아서 그 직업만으로는 생계를 꾸려갈 수가 없답니다. 그래서 일년의 반은 영국에, 남은 반은 인도의 세 개 도시를 돌며 신발 무역을 하고 있는 거였죠. 그 때 그녀의 나이는 불과 24살이었습니다.

Cafe Everest, New Delhi (by )


2.
영국 아가씨와의 만남 이후, 삶이란 마음 먹기에 따라 얼마나 그 형태를 다양해 질 수 있는 것인가 어렴풋이 깨달아가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그것은 결코 명함 한장으로는 가질 수 없다는 것도. 중요한 것은 자신의 '업'에 대한 진정성, 그리고 그 경로의 창의성입니다. 여기에 제가 응원하며 지켜보는 네 명의 '벗'에 대한 이야기를 짧게 소개할까 합니다.


" 맛있는 음식을 먹는 순간은 언제나 즐겁고 편하지.
  그 순간만큼은 모두가 평등해지는 거 같아"


그는 해병대 출신임에도 좀처럼 후라이팬을 손에서 내려놓지 못하는 사람이었습니다. 낙법으로 자기 소개를 하고 면접관의 러브콜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결국 취업의 길로 들어서지 않았던 기인이었죠. 일년여의 시간을 낚시질 하듯 보낸 그는 어느 날부터인가 동네 음식점에서 일하기 시작했습니다. 중국집, 일식도시락, 삼겹살 등등 수 개월씩 일하며 기술을 익히고 조리사자격증을 하나둘 따더니만 어느날 휘리릭 호주로 날아가버렸습니다. 

3년의 시간이 흐르고 호주 르꼬르동블루를 졸업한 그는 불안함 속에서도 정진하기를 주저하지 않습니다. "마흔까지는 세계를 돌아다니며 계속 배워볼까해. 돈도 좀 모으고 말야.ㅎㅎ" 마흔 쯤에는 대학 앞에 즐거운 가게를 하나 내고 싶다는 야심가. 그의 요리가 어떤 언어를 구사할지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두근거립니다.


" 아마도 그 때쯤부터 분명해지기 시작한 거 같아.
  마흔에는 두 다리로 서고 싶다는 생각이... "


21살 군입대를 앞둔 그는 간호학원을 다니기 시작했습니다. 친구들은 주위에서 남자가 무슨 짓이냐고 수근거렸지만 아랑곳 하지 않았습니다. 저 또한 10여년 전에 그가 그런 생각을 품고 있을 거라고는 짐작조차 하지 못했습니다. 의무병으로 복무하고 제대 이후 생물학과 같은 기초 학문을 습득했습니다. 친구들 모두 취업을 하던 시절에도 새로운 입시에 매달렸고, 친구들이 결혼할 즈음에 또 다시 4년을 공부해야 했습니다.

얼마 전 다시 만난 그는 의사 가운을 입고 터프한 일상을 푸념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의 눈은 이미 마흔을 넘어 그 이후를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글쎄, 전문의가 정답만은 아니라고 생각해. 흐음 뭐를 해볼까나~" 그는 과연 어떤 의사가 될까요? 그에겐 이제 겨우 하나의 퍼즐조각이 완성되어 가고 있습니다. 


" 무엇을 배우느냐만큼 어떻게 배우느냐가 중요하고 생각해.
  나는 '다중 지능'을 끊임없이 고민하고 연구해보고 싶어."


대기업 홍보팀 직원이었던 그는 자기개발에 대한 욕구가 충만한 타입이었습니다. 끊임없이 어학을 공부하고, 이를 한 단계 더 끌어올리기 위해 통번역대학원도 마다하지 않는 열혈 직딩이었죠. 그러던 그가 어느날 사표를 내고 교대에 들어갔습니다. 준비하고 졸업하는데 5년의 시간이 흘렀습니다. 저로서는 그저 묵묵히 지켜봐줄 뿐이었습니다.

교사가 되어 다시 만난 그는 학생들과 학부모는 물론, 옆반 학생들의 관심과 지지를 모조리 흡수하고 있는 열혈 교사가 되어 있었습니다. 수업은 물론 숙제와 특별활동 하나까지도 아이들이 스스로 고민하고 발견할 수 있게끔 공 들이는 그는 특히나 함께 규칙을 논의하고 합의하는 과정을 중시하고 있었습니다. 그의 교육을 받은 다음 세대의 아이들은 어떤 '사람'으로 성장할까요? 


" 제도를 비판한다고 그 제도가 변하는 것은 아냐.
  힘들어도 시스템을 만들어가는 일을 하고 싶어."


기자를 준비했던 시간보다 기자 생활의 시간이 짧았던 그. 활동가를 거쳐 기자가 되었던 그는 현실의 사건사고를 취재하면서 그 누구보다 기사의 한계를 절감했습니다. 진실을 밝힐 수는 있지만 진실 이후의 삶에 대해서는 무엇도 해줄 수 없는 미안함. 기존의 제도에 대안을 만들어 줄 수는 없는 무력함. 그것이 그가 경험했던 기자의 삶이었습니다. 그렇게 오랜 시간 품어온 기자 생활과 결별한 그는 우여곡절 끝에 로스쿨에 진학하게 됩니다.

애당초 변호사란 직업에서 핑크빛 미래를 기대하지 않았던 그는 최근의 로스쿨 괴담들에도 크게 낙담하지는 않는 눈치입니다. 오히려 그는 로스쿨 내에서 만나게 된 다양한 경력의 사람들과의 만남에 주목하고 있습니다. 법에 대한 '낯선 시각'들이 모여 과연 무엇을 만들어 낼까요? 이제 법이 재발견되야할 시간입니다. 

Cafe Everest, New Delhi (by Slow on)


3.
쭈욱 적고 나니 누구하나 절대절명의 사명감으로 자신의 삶을 설계한 사람은 하나도 없네요. 위인이 아닌 기업가의 시대란, 그런 세상이 아닐까 싶습니다. 그러니 늦게 시작해도 상관없습니다. 오히려 '늦깍이 Slow Starter'들이 더 제대로, 제대로 끝까지 갈 수 있지 않을까요.

문득 영화 <카모메 식당 Kamome Dinner>의 사치에 상이 생각납니다. 모시던 시어머니가 별세하시자 에어 기타 Air Guitar의 나라, 핀란드로 무작정 넘어가 레스토랑이 아닌 '식당'을 열었던 사치에 상의 마음이 말이죠. 제겐 사치에 상도 기업가입니다.

인도에서 핀란드까지 넘나드니 어디선가 시나몬 향이 나는 거 같네요. 갑자기 세계 최고의 시나몬 빵을 만들어 보고 싶다는 생각이 불끈 드는 밤입니다.

우엉우엉!!

카모메 식당 Kamome Dinn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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