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샹그릴라를 향해 시속 30km - 필리핀 마닐라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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샹그릴라를 향해 시속 30km - 필리핀 마닐라

우엉군 2012. 3. 25. 16:19


비즈니스 출장으로 필리핀 마닐라를 다녀왔습니다. 사실 출장이라는게 그닥 공유할만한 내용은 없는 편인데, 마닐라는 특별히도 이런저런 생각들을 선물해 주더군요. 오늘의 이야기는 필리핀 경제산업, 마닐라 젊은 친구들, 그리고 샹그릴라 호텔에 관한 짧은 단상입니다.


1.
필리핀에 대한 인상은 입국 신고서에서 출발합니다. 입국 신고서 하단에 다른 나라에서는 볼 수 없었던 내국인 입국 이유에 대한 항목이 있었습니다. 입국 수속 절차시에도 내국인들은 2~3개의 창구에 길게 줄서서 한참을 기다려야만 합니다. 출국 시에도 절차는 동일합니다. 때로는 자리를 깔고 긴 면담을 갖는 풍경도 발생한다고 합니다.

7천여개의 섬으로 이루어진 필리핀은 서비스 산업이 산업구조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국가입니다. (2009년 기준, 서비스 51%, 제조 15%, 농업 13%) 그리고 서비스 산업의 대부분이 콜센터와 같은 BPO 산업과 관광산업을 중심으로 구성되어 있죠.

뿐만 아니라 해외노동자 송금 비중이 GDP 대비 9% 수준에 이를 정도로 해외노동자에 크게 의존하고 있습니다. (2010년 기준) 국부의 대부분이 국가간 거래나 해외에서 창출되는 국가 입장에서는 해외노동을 권장하는 것도 무리는 아닙니다.

그런 필리핀이 최근 제조업에 관심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망고, 바나나 등 농업의 강점을 바탕으로 한 농공복합산업개발단지(MIC) 개념도 구체화하고 있으며, 정부차원에서 고속도로와 같은 열악한 인프라에 투자하며 해외 직접투자를 적극 권장하고 있죠.

약 4백년간의 스페인 식민통치, 50년간의 미국 통치, 20년간의 마르코스 독재정치, 그리고 지금까지 이어져오고 있는 온갖 부정부패들. 이를 척결하겠다는 아키노 정부에겐 경제성장까진 아니더라도 최소한 경제자립을 위한 경제 원동력이 절실할 것입니다.

그럴듯한 직업을 가진 중산층 월급 수준은 한화로 약 30만원 수준(1,000페소)이라고 합니다. 그러니 서비스업 종사자들이 팁을 요구하고, 길거리의 낭인들이 적선에 기대어 삶을 꾸려가는게 무리는 아닙니다. 부디 그들에게 신의 가호이 있기를!



2.
대부분을 마카티 Makati에 머물렀기에 필리핀을 온전히 이해한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적어도 마닐라 사람들은 대부분 자신들이 살아온 삶에 매우 익숙하다는 듯한 인상이었습니다.

거리를 늘 차들로 붐비어 있었고, 앞에 차가 없더라도 운전자들은 30~40 km 수준을 유지하고 있었습니다. 물론 교통법규 상의 이슈도 있었겠지만 뭐랄까요 소위 마닐라의 강남에 해당한다는 마카티 도심의 한 가운데에 어떤 역동성이 느껴지진 않았습니다.

일부 마닐라의 젊은 피는 이런 '시속 30km 인생'에 대해 거부감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23살의 한 필리피노는 필리핀은 모든 게 느리다며 한숨을 토로했습니다. 그는 1,000페소를 참가비로 걸고 승자가 모든 걸 가져가는 레이싱 도박이 있으며, 자신도 일주일에 한번씩 참가하고 있다고 말했죠. "위험하죠, 하지만 스피드가 있어요." 어디나 질주하지 않으면 안되는 시절이 있나 봅니다.ㅠㅠ

참, 필리핀 사람들은 닭싸움 '사봉 Sabong'을 무척 좋아한다고 합니다. 도박을 좋아하는 필리핀 사람들은 전국 곳곳에서 사봉 경기를 운영하며, TV에서도 중계방송을 해줄 정도로 사랑을 많이 받고 있다고 합니다. 여기에 대해서는 jjmia님의 포스팅을 추천합니다. ('동물학대의 논란이 있는 필리핀 닭싸움-사봉(Sabong)') 

짧은 일정 탓이었겠지만 필리핀의 문화예술을 경험해 볼 기회는 없었습니다. 국내 블로그를 뒤져보아도 골프, KTV, 게이쇼 외에는 대부분 관광지 여행 정도가 전부인 듯 합니다. 그래도 분명 꿈틀거리며 솟아오르는 문화공간들과 새로운 미래를 준비하는 필리핀의 젊은 친구들이 있을텐데 그것을 만나지 못한게 너무 아쉽습니다.

그 밖의 필리핀 사람들에 대한 갈증은 호대감님의 '루손탐방' 포스팅(마닐라 서민들의 삶 속으로, 필리핀의 '미래' 글로벌시티, 보니파시오)과 pingkyak님의 '나의 필리핀 여행' 포스팅(바나웨(Banaue)와 사가다(Sagada), 그곳에서 동네 사람들과 친구되기)에서 해소하시길 추천드립니다. 두 분의 글에는 제가 경험하지 못한 필리핀의 풍경과 삶이 따뜻하게 담겨있습니다.

Manila Bay

Bonifacio (by 호대감)


3.
배낭여행이 아닌 출장의 최고 장점은 좋은 호텔을 경험할 수 있다는 점입니다. 이번은 특히나 운이 좋아서 특급 호텔인 '마카티 샹그릴라 호텔 Makati Shangri-La Hotel'에서 머무를 수 있었습니다. 제가 마닐라를 특별하게 추억하게 될 수 있었던 기저엔 아마도 이 호텔이 있지않나 싶네요.

샹그릴라 Shangri-La는 제임스 힐튼이 쓴 <잃어버린 지평선 Lost Horizon> (1933)이라는 작품에 나오는 가공의 장소입니다. 쿤룬 Kunlun 산맥의 서쪽 끝자락에 있는 숨겨진 장소에 소재하고 있으며 영원한 행복을 누릴 수 있는 히말라야의 유토피아로 묘사되고 있죠. 

샹그릴라 호텥은 이런 판타지를 정교하게 구사하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룸에 들어오는 순간 자동적으로 TV ad가 방영되고, 무척 몽환적인 시그니처 송과 이미지가 흘러나옵니다. 그 음악을 듣고 있으면 마치 자신이 샹그릴라의 어떤 끝자락에 들어서지 않았나 싶은 생각이 듭니다. 늘 술을 마시고 들어온 탓도 없진 않았겠지요 ㅋ

여하튼 마카티가 아니더라도 샹그릴라 호텔을 한번쯤 경험해 보시길 추천드립니다. 저도 오만, 피지, 몰디브 쪽 샹그릴라 호텔을 갈 수 있는 기회를 일생에 한번은 만들어 보고 싶습니다.




Shangri-La Hotel (TV ad)

4.
글을 마치며 만약 10년 전에 마닐라를 찾았다면 어땠을까 생각해 봅니다. 대학생 시절에 필리핀의 친구들을 만났더라면 지금의 제 인생은 또 어떻게 바뀌어 있었을까 궁금합니다.

세계에서 가장 작은 활화산, 따가이따이 Tagaitai를 향하는 수상보트 위에서 문득 그런 생각을 했습니다. '여행 길 위에서 죽을 수 있다면 꽤 멋진 피날레가 되지 않을까' 하는.
 
즐거웠습니다. 마닐라, 살라맛 뽀!!

우엉우엉


Taal 호수


Tagaitai 활화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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