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록어제까지의 세계 (128)
구름이 피어나는 소리
다운됐을 때는 역시 일본영화가 제격. 원없이 쭉쭉 뻗은 큰나무를 봤던 영화 . 목수일도 임업도 축제도 매력적이었지만 무엇보다도 눈 길을 사로잡았 건 일본의 목조가옥(목조주택)들이었다. 지붕, 문, 창호, 마루, 기둥, 의자, 테이블, 액자, 목욕탕까지도... 정말이지 호사스러웠다. 산 깊은 곳 저런 곳에 살고 싶다는 생각은 커녕, 나는 산 근처 목조가옥에서라도 살 수 있을까 반문하며 발 걸음을 떼기도 전에 야릇한 패배감을 맛 보고 말았다. 살아보고 싶다. 저런 곳에서. 정말. 우엉우엉 * Wood Job!, 2014, 소메타니 쇼타(유키 역), 나가사와 마사미(나오키 역), 가무사리 숲(미에 현)
정부가 원전 2기 추가 건설 계획을 발표한 가운데 지구 반대편 아프리카 대륙에서는 신재생에너지 실험이 연승을 이어가고 있다는 소식이 전해져왔습니다. 경제 규모나 자연환경상 다른 선택을 할 수 밖에 없는 것이 각자의 현실이겠지만, 잠재력 가득한 검은 대륙이 신재생에너지를 발판 삼아 화석연료를 건너 뛰고 돌파구를 만들어가는 것이 마냥 신기하고 부럽기만 합니다. 얼마 전 인도가 모바일로 전화기를 건너 뛴 것과 같은 것이겠지요. 기술도 기술이지만 중간 단계를 과감히 건너 뛰는 판단력과 의지가 대단할 따름입니다. 이 선택으로 에너지저장장치(ESS)와 전선 회사들의 희비가 갈리지 않을까 싶네요. 아래는 소식을 전한 The Economist 기사 요약본입니다. 아프리카 대륙에 행운이 함께하기를... 우엉우엉. 남아공..
지난 4월, 서울에 칼폴라니사회경제연구소(Karl Polanyi Institute Asia; KPIA)가 개소했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1988년 캐나다 본부, 프랑스 유럽본부에 이은 세 번째 연구소이자 아시아본부라는 타이틀은 묘한 자부심마저 불러일으키더군요. 그 와중에 본부와 달리 '정치경제연구소'가 아닌 '사회경제연구소'로 명명한 부분 또한 재미있는 포인트였습니다. 소식과 함께 달려갔으나 업무시간 종료, 방문은 다음을 기약합니다. 경제사학자 칼 폴라니(Karl Polanyi, 1886~1964)와의 만남은 5년전이었습니다. 당시 저는 사회적 기업에 대한 관심을 구체적인 직업의 형태로 가져가기 위해 고민하고 있었고, 닥치는 대로 책을 파며 사람들을 만날 때였습니다. 그 때 흘러흘러 만나게 된 책이 칼 ..
리스본 Lisbon 포르투갈의 수도. 유럽에서 두 번째로 오래된 도시. 일찍이 미지의 대륙을 향해 거인의 걸음으로 대항해 시대를 열었던 모험가들의 도시. 불완전한 인간을 불완전한 그대로 버려두었던 시인 페르난두 페소아 Fernando Pessoa가 태어나고 일하고 걷고 사색한 도시. 세계일주를 기념한 중세 수도원과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서점을 품고있는 도시. 에그 타르트가 태어난 도시... 언젠가는 이 도시를 천천히 걸으며 구석구석 새겨넣은 숨결들을 하나하나 만나보고 싶다. 우엉우엉 #1. Fernando Pessoa와 유서 깊은 카페 "Café A Brasileira" #2. 노랑이 명물, 트램과 "에그 타르트" (Pasteis de Nata) #3. 형형색색 창문들과 타일박물관 "Museu do Az..
'건축물'로 새로운 시공간을 창조하는 만화가 '프랑소아 스퀴턴 Francois Schuiten' 1년 전을 생각합니다. 틈틈이 훔쳐 보던 에이코믹스에서 객원기자 모집공고가 올라왔었습니다. 아마도 근무시간에 처음 봤던 걸로 기억합니다. 퇴근길에도 집에 와서도 한참을 멍하니 있었습니다. 가만히 묻고 물었습니다. 할 수 있을까. 해도 되는걸까. 그렇게 그 날 밤을 보낼 무렵 '밑져야 본전'이라며 단숨에 이력서와 자기소개서를 썼습니다. 비즈니스 이력서만 쓰다가 만화계 이력서를 쓰려니 무척 어색하면서도 재밌었던 기억이 납니다. 자기소개서도 거의 단숨에 휘리릭 써내려 갔죠. 한밤의 연애편지는 보내는게 아니라지만 모든 짝사랑이 그렇듯 오늘밤이 아니면 보내지 못할 것 같아 크게 심호흡하고 메일 '전송'을 눌렀습니다. ..
김진혁 PD의 뉴스타파 추모영상 '너의 꿈을 비웃는 자는 애써 상대하지 마'를 보고 한번은 가수 신해철에 대한 기억을 정리해야겠다 생각했다. 차일피일 미루던 중 석정현 작가의 '굿모닝 얄리' 일러스트를 보게 됐고 나도 올해가 가기전에 나름의 인사를 건네야겠다 생각하게 됐다. 가수 신해철(1968~2014)은 내게 시인이었다. 그의 음악에 열광하진 않았지만, 그의 음악은 어떤 식으로든 내 삶에 영향을 미쳤다. 초기작들은 달콤하고 아름다워서 좋았고, 중기작들은 묵직한 관찰과 내지르는 일갈이 복잡한 세상을 깔끔하게 정리해주어 좋았다. 힘겨웠던 시절 나는 그의 고백과 분노에서 많은 격려와 폭발력을 얻었다. 2000년대 초 마왕이 MBC 라디오 을 진행했을 때에는 유언장을 작성하기도 했다. 어느 비오는 새벽, 그..
10월만 해도 유가는 배럴당 $80 선에 머물것으로 예상됐습니다. 골드만삭스 Goldman Sachs는 2015년 상반기에나 WTI가 $75, 브렌트유가 $85에 다다를 것으로 전망했었죠. 하지만 유가 하락속도는 예상치를 벗어났습니다. 11월 이미 $70 구간을 지나고, 12월 첫날 WTI(美 서부텍사스산원유)는 $66을 찍었습니다. 12일 WTI는 $60를 또 다시 돌파 $57.81를 찍었습니다. 유가는 폭주기관차처럼 우하향 곡선을 그리며 미친 듯이 추락하고 있습니다. 정말 내년 상반기 배럴당 $40가 실현되는 걸까요? 이에 대해 블룸버그 비즈니스위크가 OPEC, 골드만삭스, IEA 등의 소스를 빌어 현재 벌어지고 있는 구조적 전환(structural transition)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했습니다. ..
12월 1일, 첫눈 같은 소식이 날아왔습니다. 세 명의 YTN 해직기자가 '복직' 출근을 했다는 것이었죠. '해고'라는 단어만 빼곡히 늘어선 시대에 한 줄기 빛과 같은 뉴스였습니다. 대법원 판결의 안타까움도 조금이나마 누그러지는 듯 하더군요. 복직한 주인공은 정유신 기자, 권석재 기자, 우장균 기자입니다. 2일, 뉴스타파는 세 기자의 복직 출근을 5분 분량의 영상으로 소개합니다. 기자 앞의 '해직'이라는 수식어가 '복직'으로 바뀌는 기념비적인 순간을 놓치지 않았죠. 인상적인 부분은 동료의 복직을 환영하는 YTN 후배 기자들의 인사였습니다. "선배들 돌아오셨을 때 그 자리에 내가 서 있어야겠다. 그 생각 하나로 꾹꾹 버텼다." 황 기자의 말에는 울림이 있었습니다. 몇 마디 말만으로도 밖에서 싸우는 해직기자..
최근 벌어진 대한항공 조현아 부사장 사건을 보고 있노라면 CA(Cabin Attendant, 항공 객실 승무원) 본연의 역할이 무엇일까 생각하게 됩니다. 땅콩 과자를 제공하는 것이 (대졸) 승무원의 역할은 아닐텐데요. 장거리 노선이 늘어나면서 하늘 위의 호텔급 서비스 제공이 차별화된 경쟁력이라 생각하는 게 국내 대형항공사의 현주소인 듯 합니다. 그건 서비스를 이용하는 우리도 크게 다르지 않을 겁니다. 하지만 항공 서비스가 처음부터 고객 환대 중심이었을까요? 일본 최초의 저가항공사(LCC, Low Cost Carrier)의 탄생 스토리를 다룬 일본 드라마 (2013)는 이 부분을 아주 잘 그려내고 있습니다. 일본은 2010년 일본항공(JAL)의 파산을 경험했습니다. 2012년, JAL은 우여곡절 끝에 새출..
현대 정치사상 거장 한나 아렌트 Hannah Arendt(1906-1975, 독일출생 유태계 미국인)는 의 '악의 평범성'이란 개념으로 유명세를 얻었지만, 앞서 출간된 이야말로 현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필요한 통찰과 지혜가 가득 담겨있습니다. 노동과 작얼을 구분해낸 그녀의 날카로운 집도는 노동에서 결코 자유로울 수 없는 오늘날 우리가 처한 곤경과 그 근원을 파헤칩니다. 아렌트는 '노동'에서 출발합니다. 그녀가 바라보는 '노동'은 생존의 긴박성과 필연성에 갇혀 오히려 초라해 보일 지경입니다. 그런 평가가 노동하는 모든 사람을 평가절하하고 무기력하게 만들 수도 있지만 바로 그 적나라함이 그녀가 '노동'의 다음 단계인 '작업'과 '행위'로 나아가는 당위와 힘의 원천이기도 합니다. 노동이 생존을 위한 긴박성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