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름이 피어나는 소리
"Who are you?" - 여자 김씨표류기 (2009) 본문
영화를 세 번 보고서야 알았습니다. 이 영화가 두 명의 김씨 이야기라는 것을... <김씨표류기>는 소재, 공간, 연출모두가 기가 막힌 영화였지만 그 중에서 가장 특별했던 건 배우 정려원의 재발견이 아닌가 싶습니다. 정려원의 체구, 분위기, 표정, 눈빛 모두가 '여자 김씨'를 아주 매력적인 캐릭터로 만들어 주었죠.
물론 여자 김씨라는 캐릭터는 배우 정려원만으로 완성되지 않습니다. 이 점이 영화 <김씨표류기>의 아주 치밀하고 사랑스러운 부분입니다. 여자 김씨의 공간은 남자 김씨의 밤섬 이상으로 특별한 공간입니다. 자물쇠, 침대로 사용되는 뾱뾱이, 방 한구석을 채우고 있는 콘슬로 통조림, 한 벽면을 가득 채운 달 사진, 창 밖을 엿보는 망원 카메라, 그리고 컴퓨터... 공간은 여자 김씨 그 자체죠.
재밌는 건 역시 그녀의 취미. 일년에 단 두번, 거리가 정지하고, 사람들이 증발하는 그 날, 그녀는 마치 홀로 산책하듯 곳곳을 카메라로 누빕니다. 한 낮의 달 위를 부웅부웅 떠다닙니다. 그리고 만나죠. 남자 김씨를.
여자 김씨가 남자 김씨의 세계에 참여하는 형태는 무척이나 수줍습니다. 처음엔 마치 외계인이나 애완동물을 바라보듯 손가락 하나로 남자 김씨의 세계를 터치하죠. 하지만 남자 김씨의 외로운 실험을 지켜보며 점점 적극적으로 변합니다. 마치 자신을 응원하듯 밤하늘에 로켓을 쏴올립니다.
영화 <김씨표류기>를 보며, 특히 여자 김씨를 보며, 혼자서는 결코 "Who are you?"란 질문에 답할 수 없는거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여자 김씨는 남자 김씨를 만나지 않았다면 결코 자신을 드러내지 못했겠죠. 만남이란 정말이지 강력합니다. '나는 누구인가'란 질문은 결국 누구를 만나느냐에 따라 결정되는 것 같습니다. 이거 생각보다 꽤나 철학적인 영화네요. 아님 너무 해석을 그 쪽으로 몰고 갔나요? ㅋㅋ 우엉우엉.
Too much world - 김홍집, 김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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