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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GEF] 푸틴 NYT 기고문 최후의 승자는?

우엉군 2013. 9. 14. 00:43

 

 

From the outset, Russia has advocated peaceful dialogue enabling Syrians to develop a compromise plan for their own future. We are not protecting the Syrian government, but international law. We need to use the United Nations Security Council and believe that preserving law and order in today’s complex and turbulent world is one of the few ways to keep international relations from sliding into chaos. The law is still the law, and we must follow it whether we like it or not. Under current international law, force is permitted only in self-defense or by the decision of the Security Council. Anything else is unacceptable under the United Nations Charter and would constitute an act of aggression.

 

'A Plea for Caution From Russia'
VLADIMIR V. PUTIN, The New York Times, Sep 11, 2013

 


 

 

푸틴이 크게 한 건 했습니다.

 

11일, 뉴욕타임스 오피니언 면에 '러시아의 호소 A Plea for Caution From Russia'는 기고문이 게재됐습니다. 그로부터 이틀 간 미국과 전세계를 발칵 뒤집어 놓은 세기의 기고문은 신기하게도 러시아 외교관이나 싱크탱크가 아닌 러시아 현직 대통령, 블라디미르 푸틴 Vladimir Putin의 이름으로 기고된 것이었습니다.

 

요지는 '미국의 시리아 군사개입을 우려'한다는 것. 그 논리가 기가 막힙니다. 러시아와 미국은 냉전을 겪기도 했지만 그 전에는 함께 세계를 위해 협력했고, 그 결실로 국제법과 UN을 만들었다는 것. 때문에 국제법과 UN 절차를 준수하지 않은 미국의 군사개입은 일방적이고 폭력적이며 과거 이라크나 아프간의 실패를 답습하는 잘못된 판단이라는 것입니다. 논리의 중심에 '국제법'을 들이밀었죠. 그러면서 마지막엔 오히려 민주주의와 인류평등 정신을 훈수하며 글을 맺습니다. 자신의 이름과 함께. 미국 입장에서는 정말이지 뒷목 잡을 일이었을 겁니다.

 

 

 

 

#1. Why 기고문?

 

내용도 내용이지만 더 재미있는 건 전달방식과 타이밍입니다. 일국의 대통령이면 기자회견, 성명, 인터뷰 등 입장을 전달할 수 있는 임팩트 있는 방법들이 수두룩합니다. 그런데 왜 하필 기고문(Op-Ed)을 선택했을까요? 공식 서한으로 전달해도 충분했을 메시지를 말이죠. 그건 아마도 철저히 보여주기용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푸틴 대통령은 2006년부터 글로벌 PR회사인 케첨 Ketchum을 통해 국가 이미지 브랜딩과 함께 PI(President Identity) 서비스를 받아왔습니다. 공항에서 아이의 배에 뽀뽀하는 사진이 아직도 눈앞에 선합니다.(충격 그자체;;) 이후에는 갑자기 근육맨 사진이 떠돌기도 했습니다. 푸틴 대통령은 그렇게 차갑고 믿을 수 없는 장기집권자의 이미지를 나름의 방식으로 마사지해 온 겁니다. 물론 케첨은 이번 뉴욕타임스 기고문에도 관여 했습니다.

 

푸틴의 입장에서는 미국에 일침을 가하면서도 러시아 국내와 우호국들로부터 지지도를 회복할 수 있는 그야말로 재치만점 고춧가루 팍팍 카드였을 것입니다. 밑질 것도 없습니다. 연설, 인터뷰, 사진 등으로는 전달할 수 없었던, 깊이와 무게를 더한 통찰있는 지도자의 이미지를 또 하나 업어갈 수 있으니까요. 남의 글을 통해서.

 

미국 PR회사 '케첨 Ketchum', 옴니콤 그룹에 속해 있다.

 

 

#2. 9/11

 

정말 대단한 건 11일이라는 타이밍입니다. 알카에다라면 치를 떠는 미국인들에게, 그것도 9/11에 뉴욕타임스를 통해서라니.(기고문에도 알카에다가 언급됩니다. 정말이지...) '신의 한수'라고 밖에는 표현할 길이 없습니다.

 

원래 11일에는 시리아 군사공격에 대한 미국 상원 전체회의가 예정되어 있었습니다. 하지만 9일 마거릿 브레넌 Margarret Brennan CBS 기자가 존 케리 John Kerry 미국 국무장관에게 "시리아가 군사공격을 피하려면 무엇을 해야 하느냐" 질문했고, 케리 국무장관이 "화학무기를 국제 사회 앞에 내놓으면 된다"고 답하자, 이를 러시아에서 받아서는 일명 '러시아의 제안'(시리아 화학무기 저장시설을 국제 감시하에 두고 순차적으로 폐기)이란 아이디어로 시리아에게 넘기게 되죠.  

 

공교롭게도 8일 러시아에서는 지방선거가 있었습니다. 야권의 일부 약진이 있었습니다만 결국 여당이 승리하죠. 하지만 10일, 10년만에 재개된 모스크바 시장선거에서 선거조작 의혹이 제기되는 난감한 상황에 처하게 됩니다. 푸틴으로서는 '민주적'이란 명분도 필요한 상황이었습니다. 물론 이 또한 뉴욕타임스 기고문에 담겨있습니다. 대단한 작품이죠.  

 

 

 

 

#3. NYT

 

그렇다면 뉴욕타임스는 푸틴과 케첨에 이용만 당한 것일까요? 백악관으로부터 쓴소리도 듣고 잘했다 못했다 말도 많지만, 뉴욕타임스는 미지의 영역을 개척한 것 같습니다. 어떤 차원에서 최대 수혜자는 뉴욕타임스일 수 있습니다. 전세계 대통령들이 뉴욕타임스 오피니언 면에 글을 올리려 들고, 전세계 독자들은 뉴욕타임스 오피니언 면에 또 어떤 기고문이 올라왔는지 들른다고 생각해 보세요. 뉴욕타임스는 멋진 비즈니스를 해낸 셈입니다.

 

하지만 그보다 더 훌륭한 것은 뉴욕타임스가 오피니언 면에 대한 원칙을 가지고 있고, 그 원칙을 지키며 만들어낸 세기의 비즈니스라는 점입니다. 푸틴 대통령의 기고문이 게재된 다음날인 12일, 마거릿 설리번 Margaret Sullivan 뉴욕타임스 편집장이 '비하인드 스토리'에서 밝힌 기고문 원칙은 곱씹을 점이 있습니다.

  

 

“There is no ideological litmus test” for an Op-Ed article, Andrew Rosenthal, the editorial page editor, said. In addition, he said, it is not the purpose of the Op-Ed pages to help or hurt the American government. It is to present a variety of interesting and newsworthy points of view, at least some of which will be contrary to The Times’s own point of view, expressed in its editorials.

 

'The Story Behind the Putin Op-Ed Article in The Times'
MARGARET SULLIVAN, The New York Times, Sep 12, 2013

 

  

12일, 로이터는 바샤르 자파리 유엔 주재 시리아 대사가 미국 뉴욕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시리아가 12일 기점으로 화학무기금지협약(CWC)의 회원국이 됐다”고 밝혔습니다. 8월 말, 화학무기 사용으로 5천여명에 이르는 민간인 사상자를 발생시켜 국제사회의 거센 비난을 받은 시리아가 '러시아의 제안'이 있은지 불과 3일만에 신청에서 가입까지 일사천리로 진행된 것입니다. 좋건싫건 뉴욕타임스의 표현대로 지금 시리아는 전세계의 관심을 필요로 하고, 푸틴은 그 이야기의 중심에 있습니다. ("Syria is a huge story and Putin is a central figure in it.") 그리고 우리는 어느 한 쪽이 아닌 모두의 진짜 이야기를 들어야 합니다. 우엉우엉.

 

  

 

 

* References
푸틴 기고문 전문 번역 (파리13구 님)
시리아 해법 180도 바꾼 여기자 질문 (중앙일보, 9/11)
NYT, 푸틴 기고 게재 이유…"뉴스가치 있어서" (연합뉴스, 9/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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