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름이 피어나는 소리
동네 만화가의 탄생 - 우리만화연대 '단편만화반' 본문
10주. 겨우 10주가 흘렀을 뿐인데 내 인생에 큰 변화가 찾아왔습니다. 내가, 만화를 그릴 수 있게 된 겁니다.
3개월 전쯤 서울 남산 애니메이션센터를 찾았습니다. 거기서 우연히 우리만화연대의 '단편만화반' 모집 전단지를 봤죠. 10주 과정에 25만원. 매주 목요일 저녁에 진행되는 게 조금 걸렸지만 비용 상 부담이 거의 없어서 몇 분 고민하고는 바로 전화로 등록을 했습니다. 당시 뭔가 그리는 것을 배우고 싶어서 한겨레문화센터나 일러스트 학원을 알아보고 있었는데, 그에 비하면 너무나 매력적인 과정이었습니다.
그저 견문을 넓힌다는 마음가짐으로 가볍게 첫 수업에 들어갔죠. 그런데 웬걸 수업의 목표는 10주 동안 자신만의 단편 만화를 완성하는 것. 그 때의 쇼크란... 올해 키워드 중 하나가 'Make'였기 때문에 보드게임도 제작하고, 이런저런 프로그램을 기웃거리긴 했습니다만 만화를 그린다는 생각은 전혀 한 적이 없어서 멍했습니다. 그 보다도 워낙 어린 시절부터 동경해 온 세계라 그만큼 커보였었다는 게 정확할지도 모르겠네요.
여하튼 밀도 높은 10주의 시간이 흘렀습니다. 첫 날 만화 원고지 제작에서 시작해 연출, 배경, 구도, 캐릭터, 채색, 시나리오, 콘티, 포토샵 등 만화의 모든 것을 배웠습니다. 어떻게 보면 맛만 보는 구성일 수도 있는데, 결과적으로 그 지식들로 자신의 작품을 만들어 냈으니 조남준 선생님을 비롯해 우리만화연대 측의 기획이 얼마나 치밀했는가를 새삼 느낄 수 있었습니다.
매주 목요일 저녁에 진행된 단편만화반 풍경 (오른쪽이 조남준 선생님)
작업을 위해 부득이 하루 휴가를 내야 했는데, 그 때 경험한 '만화가의 하루'가 아직도 기억에 선합니다. 전날 저녁 5시간 가량을 스케치를 했지만 완성한 페이지는 고작 2 페이지. 당일 오전에는 어차피 오후부터나 작업을 시작할 수 있을 거 같아 북한산 둘레길을 걸었죠. 그리고는 또 다시 남은 2 페이지 스케치. 중간중간 계속 사진 찍고 왔다갔다 어슬렁거리고. 저녁을 먹고 나서야 겨우 펜터치 완성. 지우개로 스케치를 지우고 선명하게 드러난 펜선을 보며 나도 모르게 환호를 질렀던 기억이... ㅎㅎ
하나의 이야기를 만들어낸다는 것. 그것은 하나의 세계를 만들어내는 것 만큼이나 힘겨웠고, 그래서 또 그 만큼의 충만함이 있었습니다. 사진이나 요리를 배웠을 때와는 아주 다른 기분이었죠. 발표회가 있었던 종강 이후 내가 속한 세계의 풍경이 바뀐 기분이었습니다.
너무나 소중한 첫 작품, '다림질' (첫 페이지)
2012. 11. 9. 새벽 04시. '만화가'로 향하는 첫 걸음이 시작되었습니다. 같은 시각 각 분야의 13명의 멋진 동기들이 함께 그 길에 올라섰습니다. 든든하고 신나는 일입니다. 우리만화연대 & 단편만화반 1기 모두 화이팅입니다!!! 우엉우엉.
* 우리만화연대 교육 프로그램 (클릭): 만화와 미학의 만남, 만화와 역사학, 생태 만화, 만화 스토리와 연출, 색채의 이해, 얼굴해부학, 단편만화반, 미술해부학 & 누드 크로키, 만화아카데미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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